광주에서의 일입니다.
말로는 누구에게고 져 본 적이 없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말발이 아주 센 초로의 할머니였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똑똑한 며느리가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 며느리는 이제 죽었다'
라며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시어머니가 조용했습니다.
그럴 분이 아닌데 이상했습니다.
그러나 이유가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들어올 때 시어머니는 벼르고 별렀습니다.
며느리를 처음에 꽉 잡아 놓지 않으면 나중에 큰일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시집살이를 시켰습니다.
생으로 트집을 잡고 일부러 모욕도 주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전혀 잡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며느리는 그때마다 시어머니의 발밑으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시어머니가 느닷없이 "친정에서 그런 것도
안 배워 왔냐?" 하고 트집을 잡았지만 며느리는
공손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친정에서 배워 온다고 했어도 시집와서 어머니께 배우는 것이 더 많아요. 모르는 것은 자꾸 나무라시고 가르쳐 주세요." 하고 머리를 조아리니 시어머니는 할 말이 없습니다.
또 한번은 "그런 것도 모르면서 대학 나왔다고 하느냐?" 시어머니는 공연히 며느리에게 모욕을 줬습니다.
그렇지만 며느리는 도리어 웃으며 "요즘 대학 나왔다고 해봐야 옛날 초등학교 나온 것만도 못해요,
어머니."
매사에 이런 식이니 시어머니가 아무리 찔러도 소리
가 나지 않습니다. 무슨 말대꾸라도 해야 큰소리를
치며 나무라겠는데 이건 어떻게 된 것인지 뭐라고
한마디 하면 그저 시어머니 발밑으로 기어 들어가니 불안하고 피곤한 것은 오히려 시어머니 쪽이었습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저쪽에서 내려가면 이쪽에서 불안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쪽에서 내려가면 반대로 저쪽에서
불안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먼저 내려가는
사람이 결국은 이기게 됩니다.
사람들은 먼저 올라가려고 하니까
서로 피곤하게 되는 것입니다.
좌우간 나중에 시어머니가 그랬답니다.
"너에게 졌으니 집안 모든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
시어머니는 권위와 힘으로 며느리를 잡으려고 했지
만 며느리가 겸손으로 내려가니 아무리 어른이라
해도 겸손에는 이길 수 없었습니다.
내려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죽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겸손보다 더 큰 덕은 없습니다.
내려갈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올라간 것입니다.
아니, 내려가는 것이 바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내려갈 수 있는 마음은 행복합니다.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