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스 트 리 아
(수도 : 비엔나)
AD 983년 오토3세가 통치할 당시 "동쪽의 나라 Osterriche"라는
이름이 붙어져 지금의 국명이 탄생했다.
1278년부터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까지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헝가리를 중심으로 대제국을 건설했으나
1,2차 세계대전 후 미, 영, 불, 소에 공동점령되어 1955년 영세중립 독립국으로 다시 태어났다.
모차르트, 하이든, 슈베르트, 브라암스 등 유명 음악가의 고향으로 더 유명하다.
인구 : 7백 50만 . 면적 : 6만 8천평방km. 종교: 카톨릭(90%)
주요도시 : 비엔나. 짤츠부르그. 인스부르그
아름다운 역사ㆍ문화가 살아있는도시 빈(비엔나)
이후 게르만족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으며 민족 대이동기를 거쳐 빈이라는 이름을 갖게된 것은 10세기 이후이다.
1276년부터 유럽 최고의 명문가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소유가 된
한때 투르크에게 점령되기도했던 이곳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융성과 더불어
호프브르그 왕궁(hofburg)
합스브르크왕가'의 역대 왕조가 13 세기부터 1918 년
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거주했던 곳이다 .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매번 각기 다른 양식으로 좀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증축하여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
총 10 개의 건물이 있으며 크게는 16 세기의 구왕궁(Hofburg)과
19~20 세기의 신왕궁(Nenu Burg)으로 구분할 수 있다
.
현재 이곳에는 왕실 교회당과 대통령 집무실, 각종박물관 귀중한 보물들이 전시된 보물실,
스페인 승마학교 등이있고 호프부르그에 있는
교회당 성가대가 비엔나소년합창단 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동상
유럽대륙을 호령했던 마리아 테레지아. 음악, 건축, 문화, 예술 등 빈의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광장의 동상은 사보이의 오이겐공으로 투르크의 공격에서 빈을 구한 장군 두 발과 꼬리로 말을 받치고 있다
나폴레옹 전투에서 대승을 이끈 칼장군 동상.
두 발로 이 거대한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불가사의하다. 수학과 물리의 대가가 만든 작품
신왕궁.
합병 발표 당시 '영웅 광장'에는 30만의 인파가 모여들어 역사의 현장을 지켜 봤다고 한다.
신왕궁은 네오 바로크 양식으로 초생달 모양으로 펼쳐져 있으며 왕가는
합수부르가(신성로마제국)의 왕관
이날마침 대통령궁 앞 광장에서는 티벹의 달라이 라마의 민주화 집회가 있었다
.
마치 성당 건물처럼 보이는 시청사(Rathaus)는
신
고딕식 건물로서 1883년에 완성된 문화공간이다
스위스문(Schweizertor)
1,552년 르네상스 시대 만들어진 이문은 유럽에서 가장 용감한 군인으로 칭송 받던
스위스의 용병들이 이문을 지켰다고 한다.
스위스문앞에는 작은 개울이 있어 도르래를 이용해 문(導蓋橋)을 여닫았으며
상단에는 당시 사용했던 도르래2개 그대로 매달려 있다.
왕궁(호프부르그)의 관문인 미하엘레문. 18세기에 세워졌다
양옆으로 4개의 '헤라클레스 조각상'이 설치되어있다.
로마시대의 유적들을 그되로 보존되고있고..
하이든이 젊은 시절에 살았던 '미하엘라 하우스
슈테판 성당
1147년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했다가 1359년 합스부르크왕가가 예전성당을 헐어 버리고 고딕양식으로 개축하였다.
65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359년에 최초로 문을 연 후에도
300여년이란 오랜 세월을 거쳐 최종 완공된
이 성당은 길이가 800년의 역사를 가진 대성당으로
입구에서 주제단까지 길이가 107m, 높이는 39m첨탑은 137m로 빈의 상징적 건물이다.
카톨릭 최초의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를 기리는 성당으로 독일어는 슈테판, 이태리어는 스테파노, 영어는 스티브다.
모차르트와 슈페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뤄진 곳으로 지하에는 합스부르크가의 귀족들과 역대 황제들의 내장을 묻어둔 카타콤베가 자리잡고 있다. 빈 시민들은 새해를 이곳에서 맞는데 투르크군이 남기고 간 180개의 대포를 녹여 만든 종소리에 신년을 맞는다.
모자이크 지붕이 화려한데 합스부르크가의 상징인 쌍두독수리가 그려져 있다. 25만개 채색기와를 이용했다고 한다.
쉔부른 궁전
원래는 황제의 수렵용 궁전이었다가 합스부르크 왕비인 마리아테레지아가 여름 별장으로 다시 개축한 궁전이다. 그녀가 이 궁전을 너무나 좋아했기에 거의 이곳에서 국사를 보고 대신들을 이곳에 머물게 했다고 한다.
.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쉔브룬 궁전과 정원은
1996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답니다
궁전은 면적이 60만 평이나 되는 합수부르그 왕가의 여름 별장이었다.
숲의 방대함과 아름다움은 말로형언키 어려울 정도다.
바로크양식의 3층 대궁전으로 방이 1441개나 되며,
내부 장식은 로코코양식으로 화려하게 꾸몄다.
아무래도 앙숙 관계인 프랑스가 베르사이유 궁전이 만들어 그에 자극 받아 만든 궁전이 아닐까 싶다
글로리에테(개선문)와 넵툰
궁내부에는 삼성 홍보판도보이고
궁전내부
값 비싼 호두목재를 사용한 방, 유난히 작은 침대가 있는 침실, 마리아 테레지아의 거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방, 도자기방 ,나전칠기방, 특히 거울의 방은 6살 난 모차르트가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곳으로 마리 앙투와네트에게 어린 모차르트가 청혼을 했던 일화가 전해진다(몰래 카메라(?)촬영한 내부일부) - 화질이 흐립니다
궁전내부 관람 (사진촬영금지)
우리는 출입이 허용된 45개의 방만 둘러보았는데 워낙 넓어 다리가 아플 정도다. 복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방문을 통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신성옥부부가 김정일비자금을 갖고 탈출한 호텔
잘정비된 하수도
국립 오페라 하우스
국립 오페라 하우스는 세계 3대 오페라 하우스 중 하나이며
객석 보다 무대가 2배가크고
공연회수는 파리.밀나노 보다 3배가 많다고한다
A석의 입장료는 2천만원, 말석의 입장료는 60만원까지 한 적이 있다 한다.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 밀라노의 스칼라와 더불어 유럽의 3대 오페라 극장으로 꼽힌다.
시립 공원 1862년 빈의 첫 공원으로 영국식 정원으로 꾸며졌다. 숲은 도심속에 허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꽃이 많아 새벽 산책코스로 그만이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황금빛 요한슈트라우스동상.
슈베르트동상
베토벤 묘지기념비
비엔나 중심가 케안트너 (Kaerntner) 거리
비엔나 최고의 중심 거리로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를 하거나
작은 공연들이 펼쳐지는 곳이다.
최고급 보석가게와 카지노가 들어서 있고 비발디가 숨을 거둔 아파트와
슈테플 백화점도 이 거리에 있단다.
여기에는 자동차가 들어 갈 수없는 보행자 전용거리이다
성령강림대축일 다음날 연휴라 거리가 한산합니다
비엔나엔 비엔나커피가 없다.
멜랑쥐 거리의 카페에서 멜랑쥐를 한잔 마셔보는 것도 특별한 체험이다.
카페에 들려 '멜랑쥐'하니 우리가 말하는 비엔나커피가 나왔다.
흰색 탑은 1679년 황제 '레오폴트 1세운 '페스트기념탑(당시 유럽에는 페스트가 창궐하여 빈에서만도 15만 명 정도가 희생되었는데, 마침내 페스트가 사라지자 이를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으로세움
좌대에는 천지창조, 노아의 홍수, 최후의 만찬 등을 묘사한 부조가 있고,
윗부분에는 삼위일체상이 황금빛으로 빛난다
유태인 추모탑
한국인 식당
빈(비엔나) 의과대학 건물
오스트리아의 명물 초콜렐 (꾀 비싸다)
동화같은 주거건물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이상적인 주거건물을 지어보자는 빈 시당국의 건의로, 미술가건축가이자 생태주의자인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가 1985년 10월 건설하였다.
빈 시에서 운영하는 집합주택으로, 빈 시내 헤츠가세역(驛) 근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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