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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교

좋은 심판

 


 

 좋은    심판   

 

  옛날에 어느 사냥꾼이 있었다. 그는 독수리를 잡으려 화살을 겨누고 있었건만, 그 독수리는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어딘가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자세히 봤더니 독수리는 뱀을 잡아먹으려고 그 뱀을 쳐다보느라 자신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뱀도 마찬가지로 어딘가를 응시보고 있었는데 그것은 개구리를 잡아 먹으려 도무지 독수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개구리도 마찬가지로 무당벌레를 잡아먹으려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노려보고 있었다. 무당벌레도 꿈쩍 않고 있었다. 무당벌레는 진딧물에 정신 팔려 개구리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냥꾼은 이러한 먹이사슬을 보다가 슬그머니 활을 내려놓고, 갑자기 자기 뒤를 쳐다보았다. 혹 누군가가 자신을 그렇게 잡아먹으려는 것은 아닌가. 사냥꾼은 볼 수 없었지만, 그를 뚫어지라 쳐다보는 적 아닌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라는 모래시계다.

 

 

 

지금이라도 죽는다면 나는 어떤 인생결산서를 내놓을 것인가.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면류관이 기대된다는 고백을 진실로 나는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죽음 앞에서도 그런 담대함을 가지려면 최소한 다음 세 가지를 염두(念頭)해 두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첫째는, 신과의 관계(關係)를 생각해야 한다. 집합은 중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의 첫 관문이다. 서로 교차되는 부분을 교집합이라고 하고, 부분집합은 어느 한 원소가 다른 집합 원소에 포함되는 것을 말한다. 만약 A가 신(神)이고 B가 사람이라면, 자신은 A와 공유되는 부분도 있지만 분명한 자신의 영역이 있다고 믿기에 인생이란 교집합(交集合)이라는 정의를 내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신을 배제한 채 자신의 영역이 있을 수 있을까. 아니 과연 그러한 현실이 가능한 일일까. 우리 멤버가 죽음이 가까이 오자, 가장 염려했던 일은 처자식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關係)였다. 과거를 회상하며 신부에게 고해성사(告解聖事)하듯, 내게 용서를 구하며 그 앞에 설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많은 사람의 임종(臨終) 순간을 지켜보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역시나 그처럼 신과의 관계를 염려하며 눈을 감는다. 아무리 큰 소리쳐도 죽음 앞에선 인간은 한낱 어린아이처럼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결국 모든 인간 B는 A안에 속해있는 일부 원소인 부분집합이지, 자신의 고유영역을 주장하는 교집합(交集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 앞에선 인간은 매사에 그 안에서의 삶이 필요(必要)하다. 내가 믿든 안 믿든 죽으면 절대자 앞에 서야 하므로, 살아있을 때에 그의 영역을 인정하며 그와의 관계를 인식하며 모든 일을 해야만 갑작스럽게 부른다해도 당황하지 않고 서지 않겠는가. 둘째는, 관리(管理)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30대에 유럽을 정복한 알렉산더가 말라리아로 죽어갈 때에 그는 관(棺)에 구멍을 내어서 자신의 팔을 끼워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천하를 호령한 자신도 죽을 땐 마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록펠러, 버핏, 빌게이츠, 성룡이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다는 일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故 유일한박사로부터 가수 김장훈, 송명근교수와 그리고 많은 무명인들의 전 재산 기부는 소유에 눈이 먼 보통사람들의 눈을 뜨게 했다. 그들은 최소한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임을 일찍 깨달았고, 진정한 인생의 본향은 이 땅이 아니라 저 하늘임을 알았기에 그런 결단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더 본질적으론 내 손에 무언가가 가득 차 있을 때는 남의 손을 잡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찍 알았던 위대한 사람들이다. 흔히 10대 20대 때는 돈의 틀을 마련키 위해 공부하고, 30대 40대에는 열심히 돈을 모으고, 50대 돈을 잘 관리하고 60대 70대는 돈을 잘 써야할 때라고 말한다. 적어도 그들처럼 재산을 다 기부(寄附)하지는 못한다 해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앞에 서야한다면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달란트 비유에서 말하듯 인생의 주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시간과 재물 그리고 여러 가지 재능들을 맡기셨다. 사람은 살아있을 때에 다만 청지기로서 그러한 것들을 잘 관리하다가 죽는 순간에 그 앞에 내놓아야 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엄연히 달란트를 맡은 자이다. 맡은 자가 할 일은 충성이다. 주인의 소중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채, 내 일에만 정신없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은 맡긴 자는 반드시 맡은 자에게 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죽음 앞에서 인격(人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의 위대함은 얼마나 소유 했느냐에 있지 않고 어떤 존재(存在)가 되어 있는 가에 있다. 안타까운 일은 사람들은 신과의 관계도 좋고, 청지기로서 인생 관리도 잘하고 있지만, 이웃이 바라보는 그 사람의 인격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많다는 일이다. 그런 사람은 살아있을 때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러움을 받을지는 몰라도, 죽을 땐 눈 감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에 의사와 교사인 부모가 자녀에게 칼로 위협하며 공부를 시켰다는 뉴스를 듣고서 우리 모두는 경악(驚愕)을 금치 못했다. 이러한 인격 장애인이 늘어가고 있다. 겉은 멀쩡한데 내부적으론 수많은 상처로 인해 정상인이 별로 없는 세상이다. 입술로 아무리 신을 부르짖어도, 심령이 가난하지 않고는 그의 나라에 갈 수가 없다고 산상수훈은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내 안의 오만과 욕망을 버리지 않고서 누구 내 곁에 다가와 손을 잡아주겠는가. 내가 이웃에 대해 용서와 배려를 모르는 한 어느 누구의 손을 붙잡을 수 있겠는가. 마지막 그 날, 양과 염소의 구분은 소유와 관리에 있지 않고 오로지 연약한 자를 신처럼 대우했던 인격(人格)에 있다. 트러블 메이커에서 피스메이커로 변화된 인격이 죽음을 두렵지 않게 만들어 줄 뿐이다. 주님, 이 사순시기에. 우리모두는 잘 살려고 하지 말고 잘 죽으려는 순간들이 되게 하소서. 언제 당신이 부르셔도 두려움 없이 서도록, 당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맡겨주신 달란트 잘 관리하고, 그리고 내 이웃을 당신처럼 사랑하는 인격을 갖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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