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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순례(1.2.3차)

동방박사의 경배(주님 공현대축일)

동방박사의  경배

 

 

 

 

 

 

 

 

 

황금과 몰약과 유향

 

 

 

몰약 [沒藥,

 

아랍어로'맛이 쓰다'라는 뜻의 'murr'에서 유래한다.

쓴맛이 나며 향기가 좋고 노란색을 띤 적갈색의 함유수지(含油樹脂) 고무이다.

 몰약은 고대 근동(近東) 지방이나 중동지역에서는 매우 귀하게 여겼다.

값비싼 향료·향수·화장품의 성분이었으며, 약으로는 국소도포제 및 미라를 만들 때 방부제로 사용했다.

.  이스라엘에서는 기온이 높고 건조한 엔게디 키부츠 식물원에서 몰약나무를 볼 수 있고, 

 

  창세기에서 이스마엘 상인이나 요셉의 형들이 애굽으로 가져간 몰약은

반일화(半日花,)에서 생산된 반일화 몰약으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몰약은 약간의 방부효과·수렴(收斂)효과가 있으며,

의약품으로서는 위 내 가스 제거제로 쓰이고,

몰약 팅크 제제는 잇몸 및 구강 질환의 통증을 완화하는 데 쓰인다.

몰약에서 증류시킨 정유(精油)는 몇몇 강한 향수의 구성성분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 엔게디 키부츠에  몰약나무가 재배되고 있다.

 

 

 

 

겉피가 살살 벗겨지면 초록의 속살이 보인다.

 흠집을 내면 우유빛 몰약이 흐른다.

 

 

 

동방박사가 예수님께 봉헌한  몰약을 채취하는  반일화 

 

 

몰약을 채취하는 분홍색 반일화 

 

 

  

반일화(질이 좀 떨어지는몰약)

반일화는 아침에 피기 시작하여 정오가 지나면 곧 시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우리나라의 산철쭉나무와 비슷하다 

 

   

 

 

 

유향 (수지 [樹脂]) 

      

유향수를 잘랐을 때 나오는 부드러운 분비액으로 만드는 향기로운 수지(樹脂)이다.

주로 금속을 보호하고 도장(塗裝)하는 데 쓰는 연한 색의 니스를 만드는 데 이용된다.

유향은 또한 치과용 점착제로도 쓰고 있다.

유향수는 옻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관목으로

시리아에서 스페인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지역,에 자라고 있다.

50년경부터 에게해의 그리스에 있는 키오스 섬에서 거의 모든 양의 수지를 만들어왔다.

수지를 모으기 위해서는 줄기와 원 가지에 세로로 수많은 상처를 낸다.

 대개 유향은 완두만한 크기의 물방울 형태로 팔린다.

연노란색 또는 연한 녹색을 띠는 유향은 유리 파편처럼 투명했다가 서서히 검게 변한다.

 

 

 

유향나무

 

유향나무

 

유향

 

 

예루살렘  향파는 가게에서 진열된 유향

 

유향상점

 

 

   동방박사의 무덤

 

1275년에 마르코 폴로가 동방박사의 나라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그 페르샤의 사바시라는 곳은 동방박사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무덤에는 비문이 기록되어 있고 거기에는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으며  그 이후에 그들에게 어떤 결과가 왔는지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을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자세히 전해주고 있습니다.그 세 박사 중에
 첫째 박사는 발타잘(Balthasar)이라는 정치학 박사였습니다.  
이 정치학 박사는 새 임금의 별을 찾아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황금상자를 가지고 예수님께 드리면서 "정의의 통치를 해주십시오,  왕 중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하고 바쳤다는 것이 비문에 씌어 있습니다.

 

두 번째 박사는 자스팔(Jaspar)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철학박사였고
 예언자의 별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서 진리의 다스림으로 인류를 다스려 주시길 바라면서

유향옥합을 바쳤다고 합니다.

 

세 번째 멜키올(Melchior)이라는 박사는 의학박사였는데  페르샤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였습니다.

 

그는 물약 항아리를 주님 앞에 바치면서 "사랑의 통치를, 몸가 마음의 병을 고치는  주님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

 

 

그것만 비문에 씌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가 있은 지 33년 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직후 

세박사의 대화가 그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박사는 "나는 왕에게 바칠 선물로 황금을 가지고 갔지만 그 아기 앞에 드릴 때는  
황금이 돌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부끄러웠소"하고 이야기했습니다.

둘째 박사는 "나는 예언자에게 바칠 선물로 인도산 유향을 드렸지만  베들레헴의 아기께

경배할 때는 가장 값진 향유도 그 아기께는

 한갓 풀냄새만도 못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동방박사 묘지교회가 이란의 북부 우루미에라는 도시에 있다.

동방박사 무덤교회옆에 아르메이안 소속의 마리아기념교회가 나란히 있다.

동방박사기념교회는 화재로 1944년 재건축된 건물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동방박사들은 자신이 섬기던 신을 버리고 예수를 믿는 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이란에서 떠났던 동방박사는 자신이 섬기던 조로아스터교(배화교)를 버리고

예수를 위한 예배를 드리게 된다.

 동방박사가 돌아와서 예수를 섬겼다고 하는 배화교 신전이었던 그 장소가 바로 이 교회인데,

벽의 두께가 2미터 정도나 되어 어떤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지어져 있어서

지금까지 보존상태가 좋다.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세례를 베풀던 자리며 기도하던 자리며 오밀조밀하게

좁은 공간에 꾸며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곳에서 동박박사의 비문이 발견되었는데 구소비에트 연방에서 그 비문을 가져다가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키에프(Kief)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고

인도의 역사학자는 기록하고 있다.  

 

동방박사 무덤교회, 마리아교회  

 

동방박사 무덤교회 입구

 

동방박사교회 내부 제대  

 

동방박사의 묘

 

   

동방박사교회 내부 

그런데 동방박사의 유골은 여러 경로를 거쳐 지금 독일 퀼른 대성당의

 동방박사 무덤교회에 에 있다고 하는군요.

 

 독일 쾰른 대성당

 

 

쾰른으로 옮겨져 안치되는 동박박사들의 유골들, (쾰른성당 제대 조각)

 

 

독일 쾰른 대성당에 있는 동방박사의 무덤은 중세 유럽의 금세공업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 길이가 220cm, 높이가 153cm, 넓이가 110cm에 이르고, 74명의 인물이 조각되었는데,

그 전체를 은으로 만든 다음에 금으로 덧입혔으며,

1000개가 넘는 보석이 박혀 있습니다.

 

   

 

 

 

 

참 

전설에 따르면, 동방박사의 무덤은 본디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어키 이스탐불)에 있었습니다. 

4세기에 밀라노의 대주교 유스토리우스가 이것을 파헤쳐보니, 다리뼈만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 유골을 수습하여, 이태리로 옮겨왔습니다.

그는 평소 동방박사의 유적을 모으는데  아주 열심이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에게

이것을 바칠 요량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그 후 신성로마제국 바바로사 황제(프리드리히 1세)가 밀라노를 점령하였을 때(1164년),

쾰른의 대주교 라인날트(Rainald von Dassel)가, 역시 전승노획물로 가져왔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대주교 필립(Philipp von Heinsberg, 1167–1191)은

금은세공기술자 베르둔에게 동방박사의 이 유골을 잘 보존할 무덤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그는 1190년-1220년 사이에 이것을 일차 완성하였으며,

후에 여러 손길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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