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 가 리
수도:부다페스트(210만명)
인구: 1.000만 면적: 93.031평방km(한반도2/5)
부다 페스트
수도인 부다페스트는 인구 약 210만 명이 사는 동유럽 최대의 도시이다
다뉴브강을 경계로 부다와 페스트지역으로 나뉜다
다뉴브강의 아름다운 8개다리.합스부르크 왕조의 아름다운 건축양식.
자연환경은 "동유럽의 장미" ."다뉴브의진주" 로 불리운다
다뉴브강의 야경은 너무나 환상적이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2012년 7월 7일 (토) 09:40 KBS 1TV 방영
다듀브 강은 독일에서 시작해 여러 나라를 거쳐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이른다.그 중 부다페스트는 ‘다뉴브의 진주’라고 불릴 만큼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
부다페스트는 다뉴브 강을 기준으로 고지대인 부다와 저지대인 페스트로 나뉜다.
깊은 역사와 유적이 많은 부다와 서민들의 삶터인 페스트를 이어주는 세체니 다리와
이채로운 매력을 지닌 어부의 요새와 마차시 성당은 다뉴브 강변을 장식한다.특히 다뉴브 강이 아름다운 건, 밤하늘의 별이 생각나지 않는 황홀한 야경이다.
강으로 뛰어드는 수상버스부터 90년 된 나무 롤러코스터,포도주의 군왕이라 극찬했다는 와인의 고장, 토카이까지!모든 걸 볼 수 있는 매력의 집합소, 헝가리로 떠난다.
영웅 광장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해 만든 기념탑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1896년에 조성한 광장으로 중앙에 대천사 가브리엘이 35m 탑위에 서 있는데
오른손에는 헝가리 왕관을, 왼손에는 로마교황의 십자가를 들고 있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조각된 중앙탑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말을 탄 마자르의 일곱개 부족장들과 그 수장 '아르파트'가 조각되어 있고,
반원형으로 나뉘어진 2개의 주량 양쪽에는
헝가리의 초대국왕 '이슈트반'과 독립운동가 '코슈트' 등
역대왕들과 영웅들이 연대순으로 조각되어 있다.
어느날 가브리엘 대천사가 로마왕의 꿈에 나타나 이슈트반 1세에게 왕위를 내리도록
했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영웅광장옆 국립 미술관
저녁은 칼덴베르크에서(옛날 지하 술창고였다고합니다)
직접 발효한 헝가리 하우스 맥주를 맛보고
집시들의 음악공연
모두가 신나게 춤과 노래를
헝가리의 슬픈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세체니다리
영화 '글루미 썬데이'에서 독일 사업가 한스가 일로나에게 청혼을 거절당한 뒤 글루미썬데이라는 곡을 듣고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영화 속에서 우울한 음악이 나올 때마다 이 다리가 등장하는데 영화 때문일까 최근까지도 이 다리에서 자살하는 헝가리인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보트가 늘 대기하고 있다고 하는데 헝가리와 한국이 자살 1,2위 국을 다툰다는데 .......
도나우( 다뉴브)강 야간 유람선상에서
길이 약 2,850km, 유역면적 약 81만 6000㎢이다.
영어로는 다뉴브(Danube), 체코어로는 두나이(Dunaj),
헝가리어로는 두나(Duna),
세르비아어·불가리아어로는 두나브(Dunav), 루마니아어로는 두너레아(Dunărea)로,
모두가 라틴어 두나비우스(Dunavius)에서 유래한다.
볼가강에 버금가는 긴 강으로,
본류는 독일·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
유고슬라비아·불가리아·루마니아·우크라이나 등 여러 나라를 지나고,
빈·부다페스트·베오그라드 등 각국의 수도가 모두 그 본류 연안에 위치한다.
도나우강 야간유람선상에서 멋진 왈츠춤을...
환상적인 도나우강의 야경
겔레르트언덕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길다는 도나우강을 멋지게 볼 수 있는 포인트다. 강을 중심으로 좌측 언덕이 왕궁이 있는 곳이 부다지역이고, 오른쪽 평지가 페스트지역이다. 부다는 고대 로마의 군사기지로 시작되어 왕궁에는 발굴터가 있으며 페스트는 13세기 이후에 도시를 이루기 시작해서 중세이후 상업과 예술의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1849년 세체니 다리가 연결되면서 두 도시는 하나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도나우강 8개의 다리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체니다리를 볼수있는포인트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
수륙양용 버스 (시내에서는 버스기사. 강에서는 선장이운전)
천장 돔이 화려한 성이슈트반 대성당
기독교를 헝가리에 전파한 이스트반을 기리기 위한 성당으로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50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탑의 높이는 96m로, 건국의 해인 896년에서 96을 의미한다. 도나우강변의 모든 건물은 시야을 위해 이 성당보다 더 높게 지을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주제단 한 가운데 모신 분은 예수님이 아니라 이슈트반왕이다. 박공에 새겨진 성인상.희브리어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이슈트반왕의 오른손 미(퍼음)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국회의사당
건국 1천년을 기념해 세운 성당으로 외벽엔 헝가리 역대 통치자 88명의 동상이 서있으며 1년 365일을 상징하는 365개의 첨탑이 있다.
어부의 요새
네오로마네스크 양식의 어부의 요새. 고깔모양의 뾰족한 탑 7개가 도나우강을 바라보고 있다. 이는 헝가리 7개 부족을 상징하고 있다. 외적의 침입을 받을 때 시민군은 왕궁의 지켰고 도나우강가에 살던 어부들은 강 건너 기습하는 적들을 지켰는데 그들이 축조했다고 해서 어부의 요새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헝가리 건국의 아버지 이슈트반의 기마상.
종려나무잎을 높이 들고 있는 여신상은 독일로부터 도시를 해방시킨 소련군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조형물이다. 여신은 모스크바를 바라보고 있다.
치타델라 요새겔레르트 언덕 정상이 있는 요새로 합스부르크왕가가 헝가리를 감시하기 위해 세웠다. 2차세계대전때는 독일이 주둔하여 부다페스트 시내를 향해 포격했던 장소다. 그때 왕궁과 세체니 다리 등 구시가지 대부분이 폐허가 되고 만다. 당시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자신을 향해 포격을 가했던 대포를 전시해 놓아 역사의 교훈을 삼고자 했다.
해발 235m의 바위산에 위치한 이 '겔레르트 언덕'은
예전에는 '케렌 언덕'이라고 불렀는데,
11세기
카톨릭을 전파하다 순교한 이탈리아 선교사 '겔레르트'를 기리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겔레르트언덕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지정
왼쪽에 왕궁이 보이고 서쪽이 부다, 동쪽이 페스트 지역.부다페스트는 세계에서 6번째로 아름다운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글루미 썬데이'라는 영화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 주제곡에 얽힌 일화가 있다.
왕궁극장. 베토벤이 이곳에서 머물면서 월광소나타, '엘리제를 위하여'를 작곡했던 곳.
로마유적 터(복원중)
부다왕궁
삼위일체상은 페스트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고한다.
마차시 성당
카톨릭과 이슬람의 분위기가 혼재한 마차시 성당헝가리 건물의 특징이 바로 알록달록한 지붕인데 도자기를 한조각 한조각 구워 붙였다고 한다. 색깔이 매우 화려하고 독특한데 헝가리 유명한 도자기 회사인 헤렌드가 도자 지붕을 올렸다고 한다. 몇 년에 한번씩 지붕을 교체하는데 내려진 지붕은 판매한다고 한다. 마차시 왕의 명으로 지은 성당으로 왕가의 문장과 머리카락이 보관되었으며 성당명이 되었다. 대관식과 두 번의 결혼식을 거행했다고한다.
이슬람 아라베스크 무늬
1541년 터키에 점령당하자 회교사원으로 바뀌어 150년동안 사용되었는데
이때 중앙제단이 모두 파괴되었고 이슬람 아라베스크 무늬로 바뀌게 된다.
투르크가 물러나자 다시 바뀌면서 바로크 스타일로 개축되었다.. 5세기에 지은 이스탄불의 성소피아 성당처럼...
황금으로 치장한 중앙제단
헝가리 황제의 왕관 모조품. 십자가가 살짝 기울어진 것이 특징
성당모형
요한 스트라우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 참고 )
헝가리는 슬픈 역사의 나라입니다.
14세기에 몽골의 침입을 받았고 15세기 마차시 성당을 세운 마차시 국왕때
전성기를 맞아 모라비아 왕국을 함락시키지만
1526년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국왕이 전사하면서 투르크의 지배를 받다가
풍운아 사보이공자 오이겐의 투르크 축출로 오스트리아의 속국이 됩니다.
1867년 오스트리아와의 협약으로 이중제국이 되면서 자치권을 받아
1차대전 전까지 번영의 길을 걷지만,
일차대전에 오스트리아와 함께 참전했다가 패전으로 이어졌고
루마니아, 독일의 잇따른 침략을 받은 끝에 결국 공산화됩니다.
1956년 반소봉기를 비롯해 시민들이 모이는 장소가 국회의사당 광장이라고 하더군요.
유럽속에 아시아인, 마자르족
도나우 강은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선인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해협이 떠오른다. 지형적 경계선이 터키라면 정신적인 경계선은 헝가리가 아닐까 싶다.
유럽의 한가운데 자리한 헝가리는 7개 나라와 몸을 맞대고 있는데 게르만, 라틴, 슬라브족들 사이에 외딴 섬처럼 아시아 인종을 이루며 살아오고 있다. 우랄산맥 동쪽 유목민족이 넘어간 '마자르인', 정신적 혈연적 기반으로 유럽한 가운데에서 섬처럼 독특한 문화를 일궈내고 있다. 아마도 수많은 외침에도 동화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마자르정신'에 있지 않을까 싶다. 마자르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거의 하늘을 찌르게 되는데 '마자르인', '마자르 음식', 헝가리 항공사 이름이 '마자르'인 것을 보면 그들의 국가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게 해준다. 그래서일까 헝가리인의 외모는 완연한 서양인으로 바뀌었지만 육감적으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시조가 주몽처럼 알에서 태어났고, 아이들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으며 이름앞에 성을 쓰고 존대말도 쓴다. '빨리 빨리' 문화가 있고, 매운 음식인 고추를 즐기며, '궁상각치우' 음악까지 있으니 한국인의 정서와 묘하게도 닮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말 타고 가는데 2년이 걸린다는데 그보다 더 먼 곳에서 우리네 삶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니 마냥 신기하다.
우랄산맥을 넘어서 헝가리인들은 우랄산맥 동쪽에서 넘어왔다. 오늘날 카자흐스탄,우즈베크스탄 등이 아니면 몽골과 우리나라까지도 선조일 가능성이 높다. 고려때 헝가리의 조상들이 개성 벽란도에 들어와 비단과 인삼을 샀는지도 모른다. 'Hungary'의 이름에서 보듯 헝가리인의 뿌리가 한때 유럽을 공포로 몰아 넣은 Hun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헝가리인들은 마자르족이지만 10세기 이전의 기록은 다 지워졌기 때문에 그 뿌리야 말로 수수께끼다. 아무래도 훈족의 후예가 아닌가 싶은데 이는 우리 역사책에도 등장하는 흉노족을 말한다. 한무제에 쫒겨 서쪽을 달아났다고 하는데 로마의 멸망을 재촉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긴 부다페스트 시내 곳곳의 청동상들이 거의 말을 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은 초원을 누비며 세상을 호령했던 북방 유목민임이 틀림없다. 비운의 역사, 헝가리거대한 산맥을 넘어 유럽 땅으로 와 처음에는 부족국가를 이루다가 이스트반 1세(재위 997~1038) 때 헝가리의 첫 왕으로 즉위하고 크리스트교를 받아들임으로써 급속히 유럽화가 진행된다. 그러나 1241년 무시무시한 몽고군이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 침략하는 바람에헝가리는 쑥대밭이 되고 만다. 다행히 몽고의 대칸이 죽을 때마다 주둔군들이 썰물처럼 고향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국가 위기를 넘기곤 했다. 그러고보니 몽고라는 나라는 동쪽으로 한반도, 서쪽으로 헝가리까지 세력을 넓혔으니 인류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한 나라였다. 서양인을 벌벌 떨게 한 몽고족이 요즈음 한족 트럭에 깔려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역사란 참 묘하다. 유럽대륙까지 호령한 기백은 사라지고 은둔국가로 바뀐 것이다. 어쨌든 몽고가 물러나자 헝가리는 문화의 번영을 구가한다. 200여년간 건축, 음악 등 르네상스의 행복을 누리다가 1526년 모하치 전투에서 헝가리군이 궤멸당하면서 다시 중동의 강자인 오스만 투르크의 말발굽 아래 놓이게 된다. 150년 간 나라 잃은 설움속에 식민지의 삶을 이어나갔고 오로지 마자르 정신으로 버티었다. 그러나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투르크군은 오스트리아 빈 앞에서 오이겐공에 의해섬멸당하고만다. 다시 헝가리 쪽으로 후퇴해 밀고 밀리는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전쟁의 고통은 고스란히 헝가리인의 몫이었다. 결국 헝가리 서북부는 오스트리아가, 동남부는 투르크에 분할되는 상황의 놓이게 되는데 분단이 진행중인 우리로서는 동병상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투르크군은 헝가리 땅에서 물러갔지만 그 자리를 합스부르크 왕가가 차지한다. 그들은 유화정책이 아닌 공포정치로 헝가리를 통치했다. 주인만 바뀌었지 지긋지긋한 머슴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헝가리인의 마음속에는 늘 독립혼이 일렁이고있었다. 1848년 오스트리아의 힘이 약해지자 헝가리인들은 독립전쟁을 일으키는데 그 위세에 놀란 합스부르크왕가는 꾀를 낸다. 오스트리아는 황제의 칭호를 받고 헝가리인에게 자치권을 주고 간섭하지 않겠다며 유혹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상 유래없는 'K & K왕국(오스트리아 헝가리왕국)'이다. 그러나 명목상 합병이니 오스트리아의 뜻을 저버릴 수 없는 노릇이다. 제1차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헝가리느 독일과 오스트리아 편에서 서서 싸우다 퍠전국이 되었고 아니러니하게도 전쟁덕에 그토록 원했던 독립을 얻게 된다. 태평양 전쟁으로 패망한 일본 때문에 광복을 얻은 우리네와 흡사한 장면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충돌을 일삼는데 히틀러의 나치 정부 등 극우세력이 득세하자 결국 제 2차세계대전에서 헝가리는 독일과 이태리 편에 서서 또 한번 패전의 맛을 본다. 이쯤되니 헝가리만큼 줄을 잘못 서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전쟁에 개입할수록 수많은 문화유산은 파괴되고 전후 재건의 고통은 모두 국민들 몫이다. 나치가 물러나자 1944년 소련의 붉은 군대가 이땅에 깃발을 꽂는다. 또다시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하고만다. 좌절과 고통. 마지막 심지마져 꺼질 것만 같은 헝가리였지만 1956년 10월 23일 공산위성국에서는 최초로 반공 반소 시민봉기가 일어난다. 김춘수 시인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에도 소개되었듯 지구인의 시선은 부다페스트로 향했다. 2주간 봉기로 수만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고, 20만명이 고국을 등지고 망명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결국 마자르인의 궤도에 들어왔다. 1989년 동구권에 개혁의 바람이 일자 헝가리는 그토록 기다렸던 공산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자유세계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헝가리는 유럽의 서쪽을 차지하고 있어 전쟁의 방패막이역할을 해야만 했다. 강대국의 균형이 깨지면 영락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아야만 했던 비운의 국가다. 반도국가이기에 시련과 분단의 겪었던 우리네 역사와 흡사한 점이 있다. 2번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부다페스트는 70%가 파괴되었고 사회주의속에서 정신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오늘날 유럽의 아시아민족으로 그 정체성을 유지해온 것만으로 대견한 나라다.
■ 헝가리 & 부다페스트
유네스코가 지정한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부다페스트가 수도인 헝가리는 유목민이었던 마자르인이 세운 왕국으로 중세시대부터 다른 민족의 침략으로 많은 상처와 시련을 맞았다. 다뉴브 대평원에서 몽골이 사라진 후 약 300년 동안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해 문화, 경제 면에서 르네상스 시대를 즐길 수 있었고 이때 비로소 부다페스트는 유럽의 문화, 예술 도시로 성장한다.
16세기 오스만투르크족과 벌인 모하치 전투에서 참패한 뒤 150년 동안 이스람 지배를 받으면서 쇠퇴하였다. 그 후 약 150년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 지배를 받으면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으로 거듭났다가 세계 2차 대전 이후 완전한 독립을 이뤘다. 경제 개혁을 이루어 동유럽에서 부유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문화 수준이 높아 리스트 등 저명한 예술가, 작곡가, 과학자 들을 배출한 것에 큰 자부심을 지녔지만 서글서글한 눈매에 사람을 사귀길 좋아하는 모습이 우리와 닮은 헝가리는 볼수록 정이 간다.
도시 중심에 흐르는 아름다운 도나우 강의 수려한 경관 덕분에 부다페스트는 ‘도나우의 진주, ‘동유럽의 장미’라는 칭송을 듣는다. 896년 동양인의 후예 마자르족이 이곳에 국가를 세웠는데 강을 사이에 두고 서쪽의 부다와 동쪽의 페스트 지구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다가 다리가 놓이면서 양쪽의 교류가 활발해졌고 결국 하나로 합쳐 도시명도 부다페스트가 되었다. 온천을 즐기며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물의 도시, 부다페스트에 대해 관광객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겔레르트 언덕
왕궁 언덕 남쪽에 위치한 해발 235m의 언덕이며 지명은 헝가리인들을 카톨릭으로 개종시킨 이탈리아 선교사 성 겔레르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원래 와인 제조 농가가 있던 곳으로 카톨릭에 반대하는 폭도들이 그를 와인통에 넣어 강에 던졌다고 한다.
20세기초까지 도박장과 매춘굴로 악명 높았던 곳이지만 지금은 부다페스트 시내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최고의 전망대가 되었다. 언덕 중턱에는 성 겔레르트 상이 있고 정상에는 시타델라 요새가 있다.
▶시타델라 요새
겔레르트 언덕 정상에 있는 부다페스트 최고의 전망 포인트 이다. 왕궁이 바라다 보이는 부다지구와 아름다운 다리가 놓인 도나우강, 국회의사당이 바라다 보이는 페스트 지구 까지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일출과 일몰 무렵이 가장 아름답다. 시타델라는 1850년에 합스부르크 제국이 헝가리인들을 감시하기 위해 세운 감시용 망루로, 요새앞 40m의 자유의 여신상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물리친 소련군이 승리를 기념해 세웠다.
식민지배와 공산주의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뼈아픈 역사의 상징물로 치욕의 역사에 대해 교훈으로 삼기위해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현재 요새는 전망대 뿐만 아니라 호텔과 호스텔로 사용되고 있으며, 레스토랑과 카페도 있어 데이트를 즐기는 현지 젊은이 에게도 인기가 높다.
▶세체니 다리
부다와 페스트 지구를 연결하는 최초의 다리로 부다페스트가 탄생하는데 견인차 구실을 한 다리이다. 도나우강에 있는 다리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히는 세체니 다리는 헝가리 발전에 기여한 이슈트반 세체니에 의해 1839년 부터 공사를 시작해 10여년 만에완공 됬다.다리 설계와 공사는 영국인 T.클라크와 애덤클라크가 담당 했다.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도 기상 악화로 강을 건널 수 없었던 이슈트반 세체니가 안따까웠던 경험을 계기로 다리를 놓케된 것이 다리의 탄생 비화다. 이곳에서 바로 왕궁이 바라다 보여 야경 사진을 찍는데 가장 사랑 받는 장소가 되었으며, 1935년 세남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 <구루미 선데이>의 주요 장면에 나와 영화와 영화음악에 열광했던 젊은이 들이 이곳을 찾아 더욱 유명 해졌다.
▶에르제베트 다리
1903년에 에르제베트 황후를 기념하기 위해 놓은 다리로 세체니 다리 바로 아래 있다.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 되었다가 1964년에 재건축 되었다. 합스부르크가의 여제 마리아테레지아의 며느리이자 프란츠 요제프의 황후 에르제베트는 유난히 헝가리를 사랑 했다고 한다.
빈보다 부다페스트에 머무는 일이 더 많았고,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와 동등한 자격으로 오스트리아 & 헝가리 이중제국으로 탄생 시키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고 한다.
에르제베트 다리 아래에 있는 자유의 다리는 그녀의 남편 프란츠 요제프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1896년에 개통 했다.
▶ 어부의 요새
1896년 건축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로 마차시 성당의 개축을 담당했던 건축가 프리제시 슐레크가 지은 걸작이다. 네오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7개의 첨탑과 화랑으로 이루어졌다. 7개의 첨탑은 이곳에 뿌리를 내린 마자르인 선조를 상징한다.
요새의 목적이 아닌 도시 미화를 위해 건축한 것으로 옛날 어부들이 이곳에서 적의 침입을 방해한 데서 유래했다. 부다페스트 관광의 하일라이트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도나우 강변의 페스트 지구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 특히 석양 무렵이 인기 있다. 어부의 요새 앞에 세워진 기마상은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초대 국왕인 성 이슈트반 이다.
▶ 마챠시 성당
13세기 왕궁을 건설한 벨러 4세에 의해 고딕양식으로 지어져 성모마리아 대성당으로 불리다 15세기 마챠시 왕에 의해 뾰족탑이 증축되면서 마차시 성당으로 부르게 되었다. 16세기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이스람 사원으로 사용되다 성당으로 환원된 후 바로크 양식이 가미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화려한 색상으로 시선을 끄는 졸너이제 모자이크 지붕과 성당 전체에 장식된 섬세한 조각 작품을 감상해 보자. 성당 안은 고딕 양식과 헝가리 전통 양식이 가미돼 독특한 건축미를 자랑한다. 성당 앞에는 부다페스트 최고의 명소인 어부의 요새가 있고, 그 반대편 광장에는 페스트 기념비인 바로크 양식의 성삼위일체 원주 Szentharomsag Szobor가 있다.
▶부다 왕궁
부다페스트의 역사와 함께한 부다 왕궁은 13세기 몽고의 침입을 받은 후 13세기 후반에 벨러 4세에 의해 언덕 위에 건설 되었다. 그러나 수 차례 외세의 침략으로 파괴되고 재건축 되기를 반복하며 17세기에 들어서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지만 세계 1, 2차 대전의 폭격으로 크게 훼손을 입은 후 1950년이 되어서야 복원되었다.
현재 왕궁은 헝가리의 중세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회화 작품을 전시하는 국립미술관, 초코릿 제조업자인 루드비크가 수집한 포스터, 전쟁 사진, 70점의 회화 등을 전시하는 루드비크 박물관, 왕궁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전시하는 부다페스트 역사 박물관, 2만 여권의 장서를 소장한 국립 서체니 도서관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왕궁은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지만 내부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유로다.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왕궁 정원은 도나우 강과 아름다운 페스트 지구를 조망할 수 있는 좋은 위치의 전망대이다. 왕궁 입구 정원에는 헝가리 민족의 상징인 전설의 새 ‘투룰’ 조각상이 잇다. 왕궁은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주인공이 북한 고위 간부를 저격하는 장면으로 나왔던 곳이기도 하다.
▶ 성 이슈트반 성당
부다페스트 최대 규모의 성당으로 카톨릭 전도에 크게 기여한 헝가리의 초대 국왕 성 이슈트반 1세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으며 건국 1,000,년을 기념해 3명의 건축가에 의해 1851 ~ 1906년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 성당의 거대한 돔은 멀리서도 눈에 뜨인다. 성당 탑의 높이는 96m인데 이는 항가리 건국 원년인 896년을 상징한다고 한다. 성당 내부에는 성 이슈트반의 오른손이 미라로 보존되어 있고 페스트 시내의 풍경을 감상하고 싶다면 탑으로 올라가면 된다.
▶ 영웅 광장
1896년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광장으로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36m의 기념비에는 민족 수호신인 천사 가브리엘 상이 조각되어 있고 이곳에 뿌리를 내린 마자르족의 수장 아르파드를 중심으로 6명의 기마상이 양 옆으로 조각되어 있다. 광장을 에워싸고 있는 회랑에는 역대 국왕과 장군, 예술가 등 헝가리에서 존경 받는 위인들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광장 양 옆에는 서양 미술관과 현대 미술관이 있고 북쪽으로 시민회관이 연결되어 있다.
▶국회의사당
유럽에서 두번째로 큰 국회의사당으로 헝가리 민족의 긍지와 자존심을 상징 한다. 1884~1904년에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오직 헝가리의 건축기술, 인력, 자재만을 사용하여 네오고딕 양식으로 지어 졌다. 건물벽에는 헝거리의 역대 통치자 88명의 동상이,광장에는 4명의 존경받는 정치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691개의 방이 있는 건물안은 외관 만큼 화려하고 우아하게 꾸며져 있다. 국회의사당 내부 관람은 가이드 투어로만 가능하며 1000년 동안 내려온 헝가리 왕조의 왕관도 감상 할 수 있다. 가이드 투어는 워낙 인기가 높아 사전 예약 없이는 투어가 불가능 하다. 전날 매표소에 들러 미리 예약 해야 하고 투어 당일 여권 검사가 있다.
'성지순례(동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치만행의 현장 아우슈비츠 수용소(폴란드여행기1) (0) | 2012.08.10 |
---|---|
비엘리츠카의 200만년된 소금 광산(폴란드여행기2) (0) | 2012.08.10 |
로만틱 가도의 낭만도시 독일 퓌센(동유럽여행기6) (0) | 2012.08.10 |
오베른도르프(오스트리아)의 고요한밤 거룩한밤 성당 (0) | 2012.08.03 |
헝가리 부다페스트 유람관광 (0) | 2012.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