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박박사의 무덤성당
1275년에 마르코 폴로가 동방박사의 나라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그 페르샤의 사바시라는 곳은 동방박사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무덤에는 비문이 기록되어 있고 거기에는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으며 그것만 비문에 씌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후에 그들에게 어떤 결과가 왔는지가 적혀 있었습니다.두 번째 박사는 자스팔(Jaspar)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세 번째 멜키올(Melchior)이라는 박사는 의학박사였는데 페르샤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였습니다.
그는 물약 항아리를 주님 앞에 바치면서
첫 번째 크리스마스가 있은 지 33년 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직후 세박사의 대화가 그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박사는 "나는 왕에게 바칠 선물로 황금을 가지고 갔지만 그 아기 앞에 드릴 때는
황금이 돌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부끄러웠소"하고 이야기했습니다.
둘째 박사는 "나는 예언자에게 바칠 선물로 인도산 유향을 드렸지만 경배할 때는 가장 값진 향유도 그 아기께는
베들레헴의 아기께 한갓 풀냄새만도 못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동방박사 무덤성당는 이란의 북부 우루미에라는 도시에 있다.
동방박사 무덤성당옆에 아르메이안 소속의 마리아성당과 나란히 있다.
동방박사기념성당는 화재로 1944년 재건축된 건물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동방박사들은 자신이 섬기던 신을 버리고 예수를 믿는 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이란에서 떠났던 동방박사는 자신이 섬기던 조로아스터교(배화교)를 버리고
예수를 위한 예배를 드리게 된다.
동방박사가 돌아와서 예수를 섬겼다고 하는 배화교 신전이었던 그 장소가 바로 이 성다인데,
벽의 두께가 2미터 정도나 되어 어떤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지어져 있어서
지금까지 보존상태가 좋다.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세례를 베풀던 자리며 기도하던 자리며 오밀조밀하게
좁은 공간에 꾸며 놓은 것을 볼 수 있다.이 곳에서 동박박사의 비문이 발견되었는데 구소비에트 연방에서 그 비문을 가져다가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키에프(Kief)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고
인도의 역사학자는 기록하고 있다.
동방박사 무덤성당에 에 있다고 하는군요.
쾰른으로 옮겨져 안치되는 동박박사들의 유골들, (쾰른성당 제대 조각)
참 고
전설에 따르면, 동방박사의 무덤은 본디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어키 이스탐불)에 있었습니다.
4세기에 밀라노의 대주교 유스토리우스가 이것을 파헤쳐보니, 다리뼈만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 유골을 수습하여, 이태리로 옮겨왔습니다.
그는 평소 동방박사의 유적을 모으는데 아주 열심이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에게
이것을 바칠 요량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그 후 신성로마제국 바바로사 황제(프리드리히 1세)가 밀라노를 점령하였을 때(1164년),
쾰른의 대주교 라인날트(Rainald von Dassel)가, 역시 전승노획물로 가져왔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대주교 필립(Philipp von Heinsberg, 1167–1191)은
금은세공기술자 베르둔에게 동방박사의 이 유골을 잘 보존할 무덤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그는 1190년-1220년 사이에 이것을 일차 완성하였으며,
후에 여러 손길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독일 쾰른 대성당에 있는 동방박사의 무덤은 중세 유럽의 금세공업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 길이가 220cm, 높이가 153cm, 넓이가 110cm에 이르고, 74명의 인물이 조각되었는데,
그 전체를 은으로 만든 다음에 금으로 덧입혔으며,
1000개가 넘는 보석이 박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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