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끼에띠 부근의 란치아노는 고대에는 안싸눔이라고 알려졌었다. 그 곳은 역사 상 첫 번 째의 성체 기적이 일어난 곳이다.성체 기적이 일어났던 다른 곳들, 즉 볼세나, 시에나, 페라라 등과 더불어 란치아노는
이태리 및 전 세계에서 아주 중요한 성지이다
유리병에 모셔진 살로 변환 성체와 기적의 성혈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 그러니까 8세기 중의 어느 날 아침,
성 바실리오회 소속의 한 수사 신부가 미사를 드리면서 예수님께서 성체 성사에
실제로 현존하심에 대하여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 신부가 막 빵과 포도주의 ‘성 변화를 위한 축성’을 끝낸 순간, 그는 갑자기
면병이 살아있는 살로 변하며 포도주의 외양이 살아있는 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너무나 놀란 신부는 이 사실을 숨길 수 없어서 미사에 참석한 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곧 뛰쳐나가서 이 소식을 란치아노 시 전체와 인근 지방들에 알렸다.
이 기적이 일어난 성당은 성 론지누스에게 봉헌된 초라한 시골 성당이었다.
성 론지누스는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던 로마군의 백부장이었다.
이 곳에서 일어난 역사상 최대의 성체 기적은 성체 성사에서의 예수님의 현존에 대하여
한 수사 신부가 가졌던 의심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셨다.
역사 상의 여건들에 따라 때로는 이 성체 기적에 대한 관심이 덜한 때도 있었지만,
란치아노의 신자들은 그 기적의 진실성에 대하여 굳게 믿어오고 있다.
외양이 변화된 성체를 너무나 조심하여 깊숙히 보관해온 것이 아마도 이렇게 오랫 동안
그 놀라운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은 주요 이유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동방 가톨릭 교회에 속하는 바실리오 회의 수사들은 이 성당에서 1176년까지 봉사하였다.
그 후에는 베네딕도회 수사들이 와 있었고, 1252년에는 끼에띠의 란둘프 주교가
작은 꼰벤뚜알회에 그 성당을 맡겼고 지금까지도 그 회가 맡고 있다.
1258년에 성당은 고딕양식으로 완전히 재건되었으며 성 프란시스 성당이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
1700년에 다시 바로크양식으로 개조되어서 오늘까지 유지되어오고 있다.
기적의 성체는 처음에는 성당 앞 부분의 큰 제대 옆에 위치한 소성당에 보존되었었으나,
1636년에 성당 가운데 옆에 있는 소성당으로 옮겨졌다.
1902년부터는 새로 만들어진 기념 제대 위에 보존되고 있다.
순례자들은 두 줄의 대리석 계단을 올라가서 이 기적의 성체를 공경할 수 있다.
1200년이 지난 지금, 살 모양으로 변한 성체는 붉으스럼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오래된 수정 성작 안에 담겨있는 성혈은 다섯 개의 불규칙한 형태의 핏덩어리로
응고되어 있다. 전체 무게는 16.5 그램이다.
얼른 보면 빛이 바랜 것 같은데, 밝게 하여 보면 황토색 비슷한 자연적인 색을 볼 수 있다.
이 기적에 대한 소식은 널리 퍼져나갔으며, 1971년에는 과학적 검사에 이어 장엄한공인이 있었다.
1574년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서 관할 주교들에 의한 인정이 있었으나,
1970년과 1971년에 해부학, 병리 조직학, 화학, 및 임상 현미경학 교수이며
아레쪼(Arezzo) 병원의 수석 의사였던 오도아르도 리놀리(Odoardo Linoli)가
성 프란시스 성당을 맡고 있던 프란치스꼬회 수사 신부들의 요청에 따라
기적의 성체와 성혈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조사를 시행하였다.
검사는 두 단계로 나뉘어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리놀리 교수가 기적의 성체와 성혈의 샘플을 채취하여
(이로 인해 원래 성체의 완전한 형태였던 것이, 현재와 같이 가운데 부분이 비게 되었습니다.
즉 그 공간이 바로 샘플을 채취한 흔적입니다.
즉 예수님은 저희를 위해 살아있는 인간에게서 살을 핀셑으로 잡아뜯어내는 고통을
다시 한번 감내하신것이지요..) 아레쪼 병원의 실험실에서 검사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리놀리 교수가 완료된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과학적인 보고서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샘플이 채취된 것은 1970년 11월 18일이었는데,
란치아노의 페란또니 대주교가 참석하였다.
아브루찌 지방의 꼰벤뚜알회 및 성 프란시스 성당을 관리하는 수도회 전체가
페란또니 대주교의 관할 하에 있었다.
오전 10시 15분에 대주교는 그의 선임자였던 프란시스 페뜨라르까 주교에 의한
1886년의 봉합을 깨어 열었다.
교수는 성체로부터 20 밀리그램 정도의 아주 작은 두 개의 샘플을 채취했으며,
성혈로부터는 318 밀리그램을 채취하였다.
리놀리 교수는 거의 3 개월에 걸쳐서 그 샘플들을 조사하였다.
그는 검사 기간 동안 시에나 대학교의 인체 해부학 교수였던
유명한 로져 베르텔리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1971년 3월 4일, 성체 기적이 일어났던 그 성당에 수많은 학자들이 모였으며,
그 곳에서 리놀리 교수는 그의 분석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의 구두 설명과 더불어 수많은 사진들과 문서들이 제시되었다.
다음이 그의 발표 내용의 요약이다.
1. 성체 기적의 피는 참으로 피이며, 살은 참으로 살이다.
2. 그 살은 심장 근육이다.
3. 그 살과 피는 인간의 살과 피이다.
4. 피와 살의 혈액형은 동일하다. 이것은 그 피와 살이 동일인으로부터 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혈액형이 같은 두 사람으로부터 왔을 수도 있다.
5. 피 안에는 정상적인 피에서와 같은 정상적인 비율의 단백질들이 발견되었다.
6. 피에서는 또한 다음의 무기물들이 발견되었다. 염화물, 인, 마그네슘, 칼륨, 정상보다
약간 적은 양의 나트륨, 그리고 정상보다 많은 양의 칼슘.
( 교수는 다음의 설명을 덧붙였다. )
a. 이 살이 인간의 심장으로부터 해부적으로 잘라 온 것일 가능성은 전무하다.
b. 그 살과 피를 보존하기 위하여 화학적인 방부조처를 취한 흔적은 없다.
c. 그러므로, 그 살과 피 안의 단백질과 무기물들이 대기와 미생물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부패되지 않고 보존된 것은 절대적으로 예외적인 현상이다.
리놀리 교수의 과학적 조사는 여러 주요 의학 잡지들에 보도되었다.
그리하여 이태리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과학자들 사이에 광범위한 지지를 계속하여 받아왔다.
당시제대의모습
. 성체가 모셔져 있던 감실의 모습
기적의 성체는 기념 제대 위에 모셔져 계셨습니다
기적의 성체와 성혈이 보관되어있는 성작의 모습
역사상 첫번째 성체 기적이 일어났다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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