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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성지(스페인.포르투칼)

파리시내 관광1 (개선문. 에펠탑. 공고드광장. 유람선)

 

 

개선문(凱旋門)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기념하여 만든 건축물로

로마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을 본 떠서 설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나폴레옹은 유럽을 통일하고 돌아올때는 개선문이 완성되지 못하여

 이 문을 통하여 개선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러시아 전쟁에서 첫번째 패배로 공사가 중단 되고,

이후 나폴레옹은 워터루 전투의 페배로 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여 죽고나자 ,

그 업적이 재평가되여 나폴레옹이 죽은 30년후에 완성되였다고 한다.

결국 나폴레옹은 살아 있을때 이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죽은후에야

그의 유체가 이곳 개선문을통하여 파리로 귀환하여 앵발리드에 묻혔다.

2차대전때 드골장군이 당당히 개선문 아래로 행군하여 파리시내로 들어온것도 유명하다

   

 

 프랑스군의 승리와 영광을 기념하기 위해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명령으로 세워졌다는 파리 개선문

 

 

 

아치 모양의 개선문 안쪽의 벽면에는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운 558명의 장군들 이름이

 새겨져 있고, 외부에는 나폴레온의 군대가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는 장면들이 10개의 조각물로 새겨져 있다.

바닥에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무덤이 있다 

 

 

 

 

 

벽면마다 전쟁을 묘사한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나폴레옹 1세의 승리와 공적을 새겨있다

 

 

프랑스 혁명에서 나폴레옹 1세 시대에 걸친 128번의 전쟁과 참전한 장군 558명의 이름이란다

 

    

 

 

 높이 50미터, 개선문(凱旋門)의 바로 아래에는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는데

     사시사철 등불이 꺼지는 일이 없고 헌화(獻花)가 시드는 일이 없다고 한다

      비문에는 "자기 조국을 위해 한 프랑스 군인이 쉬고 있네" 글귀가 적혀 있데요

 

 

 

 

 

 

 

 

 

 

 

 

 

 

 

 

   혁명의 상징인  콩고드광장

 

프랑스 혁명당시 루이 16세, 마리 앙뜨아네뜨,등이  

처형된  단두대, 이곳에서 무려 1000여명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하는데 ...  

 

 

 

 

루이16세와 부인 마리앙뚜와네뜨가 투옥된 감옥 투옥후 탈출을했다가 다시잡혀 오벨리스크가있는

 꽁코드광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처형됨.

루이16세가 먼저 처형되고 75일후 마리앙뚜아네트가 처형되었다함

 

 

 

 

  콩고드광장은 프랑스의 혁명의 아픈  역사를 안고 있어

프랑스인들의  평화의 염원을 담아  단두대를 철거한후  분수대를 설치하고

프랑스어로  화합과 일치라는  이름의  콩고드 광장이라 명명 했다 합니다  

 

 

광장 복판에에는 이집트 룩소르신전에서 가져온 '룩소르 오벨리스크'가 서 있습니다.

19세기 중반 열강의 식민지 경쟁 와중에 혼란에 빠져 있던 이집트에서

프랑스의 지원을 받았던 무하마드 알리 부왕(副王)이 룩소르신전 앞을 지키던

오벨리스크 한 쌍 중에 하나를 루이 필립 왕에게 바친 것입니다

 

 

 

4000년 전 람세스 2세가 태양신을 숭배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무게가 230톤이나 돼서

이집트에서 운반해 오는 데만 4년 넘는 세월이 걸렸답니다.

전용 운반선을 만들어 지중해를 건너온 뒤

마르세유항에서 파리까지 험난한 운송과정을 거치는데요,

산과 언덕이 길을 막자 운하까지 팠다고 합니다.  

 오벨리스크엔 그 파란만장한 운반과정을 그린 도면이 새겨져 있습니다.

 

 

 

 

 

 

 

 

 

1차세계대전 연합군 총사령관(1851~1929) 포슈 원수 - 세계유일의 7성장군

 

  

샹젤리제(Champs-Elvsees) 거리

 

 개선문을 기준으로 뻗어 있는 12개의 방사형 도로 중에

개선문 정면에서 콩코드 광장에 이르는 2km의 거리를 말한다.

거리 양편에는 유명한 상점과 레스토랑, 노천 카페, 극장 등이 늘어서 있다.

샹젤리제란,  그리스 신화의 낙원을 뜻하는 엘리제(Elysses)와

들판을 뜻하는 샹(champs)의 합성어로 들판의 낙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느강 유람선

 

파리를 낭만의 도시로 부르는 것은 바로 파리 시내를 동서로 관통하는

세느강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총 길이 770km의 세느강은 파리 시내를 S자로 감아도는데,

파리의 세느강 위에는 모두 37개의 다리가 있다.

이 중 철교는 2개, 보행자 전용이 3개이다.

이 중 파리 만국박람회 때 만든 알렉산드르 3세 다리가 가장 아름답다.

세느강의 평균 수심은 5m이다.

 

한편, 세느강 위에 세워진 다양한 모습의 다리들은 제각기 독특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져

세느강의 운치를 더욱 높여준다.

 

 

 

 

세느강 양편으로 펼쳐지는 고풍스런 건물들과 에펠탑, 노트르담 대성당 등이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세느강을 관광하다 보면 강 양안에 에펠탑, 노틀담 등 수많은 문화제와 예술품 같은것을 접할수 있다.

그러한 문화재들이 대부분 강변을 따라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느강만 둘러보아도 대부분 파리의 유명한 건축물을 구경할수 있다.

 

 

 

 

 세느강 유람선

 멀리 뾰족한 에펠탑이 보이고 박물관과 옛 파리역사 등 고색 창연한 건물들이 강 양변을

장식하고 있는 사이로 세느강은 흐른다

물이 그렇게 맑지는 않지만 세느강은 예술의 도시, 파리를 흐르는 강답게 아름답다.

 

 

 

 

 

 

 

 

 

 

알렉산드로 3세교

                                                   1892년 체결한 러시아와 프랑스의 동맹과 국제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하여 1900년에 세워졌답니다.

동맹을 성사시킨 러시아황제 '알렉상드르 3세'의 이름을 따 명명되였으며

그의 아들 니콜라스 2세가 주춧돌을 놓았답니다

 


'알렉상드르 3세교' 중앙에 있는 천사 조각상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된 '알렉상드르 3세교'는 프랑스의 역사적 기념물로

세느강에는 37개의 다리가 있다는데 그중에 가장 아름답다는군요

 

 

 

 

 

 

 

 

 

더욱 세느강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강 위에 걸린 무수한 다리들이다.

다리마다 조각된 난간이나 모양이 조금씩 달라서 각기 하나의 예술품이다

 

 

 

 

 

 

 

 

 

 

 

 

 

 

 

 

 

 

 

 

 

 

 

에펠탑

 

 프랑스혁명 100주년이 되는 1889년에 파리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구스타브 에펠의 작품으로 높이 320.75m의 탑이다

2,3,4층에 전망대가 있고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고

4층 전망대는 탑꼭대기 10여m아래에 위치하고아랫층은 카페이고 최고 위는 전망대래요..

 

 

 

 

 

 

에펠탑은 20년 기한으로 해체될 예정이었으나

그 무렵 발명된 무선 전신 전화의 안테나로 탑을 이용하게 되어 에펠탑의 해체는 중단되었다고...

 

 

 

 

 

 

 

 

 

 

 

 

건축 당시에는 파리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아서  파리의 랜드 마크로 자리 잡게 되었단다.

 

 

 

 

 

 

 

 

 

 

 

 

 

센 강유람선 에서 본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13세기에 파리를 방어하기 위해 세운 요새였는데

프랑수아 1세, 샤를 5세 등에 의하여 왕궁으로 증축되었으며

루이 14세가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가기 전까지 궁전으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세계 3대박물관중 하나인 루브르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루부르 박물관1672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 거주하기로 결정하고

루브르를 왕실의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한 장소로 쓰도록 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루브르 궁전 내부에 위치해있다.

 

 

 

 

달팽이요리

먹어본 결과 쫄깃쫄깃한 소라 같은 느낌이지만, 굳이 이걸 먹어야 하는가.....

 

 

 

 

 

 

 

 

 

프랑스

 

유럽에서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는 남한 면적의 5배의 영토에

인구 약 6천만 명이다.

알프스 산맥과의 접경지역을 제외하면 국토의 80% 이상이 경작가능한 평지이다.

 

 

 

 

파리

 

1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프랑스의 수도였던 파리는

 면적이 서울의 약 1/7이며 인구는 약 220만명 정도이다.

파리는 세느강에 떠 있는 시테섬을 중심으로 발전 하였는데, BC 7~5 세기 경 부터

시태섬은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중세에 이르러 도로를 정비하고

상수도를 설치하면서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중세기에 수차례 종교전쟁이후 루이 14세의 절대정권에 의하여

화려한 궁중문화(루부르.베르사이유 등)의 꽃을 피웠으며,

이에 대항하여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파리시내가 황폐해졌지만

이것을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여 거리와 하수도 정비를 통하여

오늘의 파리 모습을 각추게 된것이다.

 

옛 영욕의 세월은 지났어도 파리(Paris)는 여전히 온 세계의 문화, 예술의 중심도시로

자리를 잡고 있다

 

 

 

 

 

 

 

 

 

 

 

 

 파리의 다리 밑(13년12월).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