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누나로 유명해진 크로아티아는
발칸반도의 굵은 역사가 관통한 크로아티아
발칸 반도 서쪽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는
우리에게 축구를 제외하면 크게 알려지지 않은 국가이다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이 작은 나라가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는 꼭 한 번 방문하고 싶은 휴양지로 꼽힌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이나 달마티아 해변에 자리한 두브로브니크는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등 세계의 부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반도국가 이다보니 우리만큼 역사적으로 고난을 많이 겪었다.
초대 왕인 토미 슬라브가 925년에 크로아티아를 건국한 이래
13세기 몽골제국의 침략을 받았다.
그 영향으로 자그레브시는 성벽이 두터워지고 감시탑을 세우는 등 요새화됐다.
이후 1500년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는다.
지금도 자그레브시 곳곳에 남아있는 유럽풍 우아한 건물들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산이다.
1918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서 독립해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됐고,
제 2차 세계대전당시 나치 독일 정권이 통치하기도 했으나, 전후 유고연방에 편입됐다.
1991년 6월25일에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선언했고,
유고연방이 이를 막고 나서면서 1995년까지 긴 내전을 겪었다.
유고연방이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반대한 이유는 소수 민족인 세르비아인들을
크로아티아인들이 학대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실제 크로아티아의 극우단체 우스타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세르비아인 50만명을 학살한 전력이 있다.
크로아티아에 살던 세르비아인들은 크라이너라는 내부 국가를 만들어
유고연방군과 함께 크로아티아에 맞서 전쟁을 벌이다가
1995년 12월 파리에서 세르비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 3국이 평화협정을 맺으며 전쟁을 끝냈다.
종교는 90% 가 카톨릭이며 남한과 북한 모두 수교국이다.
그리고
1. 넥타이와 만년필을 맨 먼저 사용한 나라
3. ‘동방견문록’의 마르코 폴로의 생가가 있다 .
가장 인기있는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는 크로아티아 도시들
꽃보다 누나 여행지 두브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
우리에겐 낯설지만 서양인들에게는 정신적 고향이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보스니아 내전당시 이 도시가 세르비아군에 의해 박격포공격을 당하자
프랑스 학술원회장이 프랑스 지식인들을 이끌고
인간방패가 되어 세르비아 해군으로 부터 지키기도 했다
아일랜드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조지 버나드 쇼는
진정한 낙원을 찾으려거든 두브로브니크로 가라” 했고
시인 바이런은 "아드리아해의 진주 " 찬탄한
드브로브닉성은
현대의 것이라고 하기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고한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구시가지는 고딕양식, 르네상스양식, 바로크시대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건축 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도시다.
붉은지붕, 하얀 벽돌집, 올리브 나무, 이국의 정취를 풍기는 종려나무...
이 모든것과 조화를 이룬 코발트빛의 아름답고 따뜻한 아드리아 해변은
세련된 유럽거리의 축소판을 보는 듯 하고.
부호들의 요트가 가득할 만큼
유럽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그리고 유럽에서 처음으로 노예 매매제를 폐지하는 등 높은 의식을 가진 도시였고
그 당시 유일하게 베니스의 라이벌로서 상업활동이 왕성했던 곳이라 한다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도시는
아드리아 해변 면한 25M높이, 길이 2KM에 달하는 흰 성벽 ,
오랜 역사를 대변하듯 대리석이 깔려있는 플라차 거리.
오노플리안 분수, 프란체스코 수도원,
세르비아 정교회, 스폰자궁과 시계탑, 렉터 궁전(내부), 대사원 등
구시가지을 관광 할수있다
구시가지 요도
두브로브니크 성벽( City Walls)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견고한 요새로 평가받고있는 드브로브니크성벽...
도시 전체를 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성벽의 총길이는 약 2km이고, 높이는 6m,
제일 높은 곳은 25m에 달하며, 성벽의 두께는 1.5~3m나 된다.
이 성곽은 10세기에 축성되고 13~14세기에 증축하거나 보완하며 현대에 이른다.
19세기에는 적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하기위해 더욱 견고하고 두텁게 보완하였다.
1,000년의 시간을 비웃는듯이 오늘도 여전히 당당하게 서있는 성벽...
이곳 역사와 중세의 성벽을 한눈에 보여주는 최고의 관광지이며 가장 인기있는 산책길이다
1991년 신유고전때 프랑스 <장 도르매송>이 보트를 타고 아드리아해에 나가
'지금 유럽문명의 상징이 불타고 있는데 유럽은 팔짱만 끼고 있는가!!"
목숨을 걸고 외쳐 서유럽 지식인들이 힘을 합쳐 지켜냈다는 곳!!
맑은 물은 바닷속이 훤히 드려다 보이고, 높이 지어진 성곽은 우람한데…..
몇군데 보수한 흔적이 역력하다.
1991년에 일어난 내전의 상처인 것이다.
그 때 이 성에 대하여 함포사격 명령을 내린 Pavle Strugar란 제독은
결국 8년동안 감옥신세를 져야만 하게 되었고,
부서진 성은 2005년에야 복구되어 세계 유산으로의 면보를 되 찿은 것이다.
91년 내전시 세르비아이 함포사격으로 피격된 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