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좌불
난주蘭州
감숙성甘肅省의 성도省都, 난주蘭州는 중국 고란산皐蘭山 북부, 황하黃河유역에 자리잡고 있다. 중국 대륙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육도의 심장 陸都心臟’이라 불리며, 이러한 위치상의 중요성 때문에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로 자리하였는데, 특히, 황하를 사이에 끼고 형성된 도시이기 때문에 실크로드상의 교역지로 번성하였다. 한漢 대에 금성金城이라 불리었으며 수隋에 이르러 지금의 지명을 갖게 된 난주는 현재 인구 200만을 넘는 대도시로서 유가협댐 건설과 옥문유전玉門油田에서 난주까지 걸친 파이프라인 건설로 원료공급이 풍요로워졌으며, 우루무치烏魯木齊, 서령西寧, 북경北京, 서안西安을 잇는 4개의 철도선과 감신甘新공로, 감령甘寧공로 등 4개의 육로선이 사방으로 개설되어 교통과 물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최대의 공업단지로 부상하였다. 특히 1958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공단은 소련의 기술 원조를 받아 크게 확장되었는데 정유, 석유화학, 합성섬유, 기계, 자동차등의 중화학 공업과 최근에는 원자력 미사일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난주는 학술•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주목되는데, 난주대학, 감숙공업대학 등 12개의 대학과 교육, 연구시설이 있으며 약 10만점에 달하는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감숙성박물관甘肅省博物館과 중국 최고의 석굴중 하나인 병령사炳灵寺석굴 등 대표적인 유적이 있다.
병령사炳灵寺석굴
난주의 적석산積石山에 위치한 불교 석굴 사원인 병령사 석굴은 황하 기슭을 따라 약 2㎞에 걸쳐 늘어서 있다. ‘병령’이란 티베트어를 음역音譯한 것으로 ‘십만불十萬佛’의 뜻인데, 즉 천불동千佛洞, 만불동萬佛洞 등과 동의어이다. 석굴이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석굴 양식 중에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169호 굴에서 ‘서진건흥원년西秦建弘元年’ 이라는 명문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420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확실시 된다. 서진 시대 개착이 시작왼 이래 북주, 수, 당시대에 활발히 조성되다가 763년 이후 토번吐藩에 함락되고 나서 다소 수리가 이루어졌으며 청나라 동치同治년간(1862~1874) 몇 차례 민족분규로 파괴되고 훼손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1951년에 이르러 조사와 연구, 복원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으며 1970년대부터 민간인에 개방하였다. 석굴은 크게 상사上寺, 중사中寺, 하사下寺로 나뉘는데 전체 194개의 석굴 및 감실에서 184굴이 하사에 집중되어 있다. 하사에는 총 694구의 석불상과 82구의 소불상이 남아 있으며 벽화도 상당수 잔존하고 있는데 그 면적이 912㎡에 달한다. 서진西秦때의 대표적인 석굴은 제1감龕과 169굴이다. 제1감에는 대형 마애삼존불이 새겨져 있는데 명나라 때 마애불 위를 흙으로 덧붙여 소상塑像처럼 나타낸 것이 1964년 유가협댐 건설 때 흙이 제거되면서 서진 본래의 마애불이 드러났다. 병령사 석굴 가운데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제 169굴은 풍부한 불상군과 가장 이른 시기의 연기年期를 가진 석굴로 병령사의 기원과 역사를 알 수 있는 기준작이다. 452년 문성제文成帝가 불교 부흥운동을 일으키면서 불교는 융성하게 되고 효문제孝文帝 때 더욱 번창하는데 이 때 석굴 조영이 크게 이루어졌다. 특히 효문제(471~499), 선무제宣武帝(500~503)때 이루어진 석굴로는 172, 169, 184굴 등이 대표적이며 북위 후기(512~515)에도 대대적으로 석굴이 개착되었는데 제125, 126, 128굴 등이 그것이다. 북주北周는 단명한 왕조였으나 그 영역이 실크로드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고 석굴사원이 번창하던 지역이므로 석굴의 조성이 활발히 일어났다. 특히 제6, 134, 172굴 등이 북주시대 조성된 주요한 석굴인데, 낮고 평평한 육계, 원만한 얼굴, 풍만한 체구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581년 중국을 통일한 수隋왕조의 문제文帝와 양제煬帝는 많은 불사佛事를 일으켰으나, 병령사 석굴에는 8, 82굴을 제외하고 석굴 개착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당唐댕 이르러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당대의 대표적인 불상으로 제171감 대불을 들 수 있다. 높이 27m의 상반신은 소조한 것이다. 본래 대불감 앞에는 다층누각多層樓閣의 건조물이 있었지만 청대 말에 전화戰火에 의하여 무너졌고 대불도 그 때 손상을 업었다.
당 이후에는 티베트의 세력이 병령사 일대를 지배하였고 원元나라 때부터 라마교가 서북 일대를 풍미함에 따라 상당수의 벽화에 원, 명明대에 덧그린 흔적이 남아있으며 라마적인 성격의 조상들도 대량으로 조성되었다.
감숙성박물관甘肅省博物館
난주시내 서쪽의 칠리하구七里河區에 위치한 박물관은 본래 1939년 과학교육관으로 설립된 종합 박물관이며 현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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