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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동유럽)

불랙마돈나 성화 의 기적 쳉스트호바(동유럽순례11)

 

불랙마돈나 성화의  순례지 쳉스트호바 

 

폴란드 카토비체 북쪽 약 50km, 바르타강(江) 연안에 위치한다.

옛날부터 순례지이자, 이 나라 가톨릭의 한 중심지로

14세기에 건립된 야스나 고라 (빛의언덕) 수도원이 있다.

 

이 수도원에는 성 요셉이 만든 나무식탁 위에 성(聖)루가가 그렸다는

"성모 마리아의 불가사의한 성화(聖畵)"가 있으며,

해마다 500만 명을 넘는 순례자찾아든다

 

 

 폴란드 야스나고라수도원에 보존된 검은 성모화.

 

전승에 의하면,

나자렛 성 가정 시절 예수님께서 목수일을 배워서 삼나무로 된 테이블을 만드셨다고 한다.

성모님께서 그 테이블를 가지고 사도 요한이 마련해 준 집으로 이사하셨다고 한다.

늘상 성모님께서 기도와 묵상으로,

그리고 일상의 삶을 사실때 예수를 양육했던 손길이 수 없이 닿았던 테이블이니,

성모님께서 함께 하셨던 테이블이다.  

 

예루살렘에 살던 신심깊은 동정녀들의 간구를 통해,

성모님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 성모님의 허락에 의해,

성모님 곁에 앉아 성스런 모습을 경외하던 루카의 손에 맡겨지게 되었다.

의사이면서 누구보다도 성모님에 대해서 복음에 많은 이야기를 하는 루카 복음사가가

성모님께 허락을 받아서,그 삼나무 식탁위에 예수님을 안고 있는

이 검은 성모님의 이콘을 그렸다고 전해 온다.

 

 

 

이곳에서 600년 동안 보존된 성화의 특징은  네가지라고 말한다.

첫째, 친근감을 가진 흑색 피부라는 것이다.

둘째, 1430년 도적들인 후스족에 의해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세번째, 성화에다가 장식을 위해 드레스가 입혀지고,  

 

네번째, 왕관이 씌어진다.

 

 

매일 아침 정각6시에 장엄한 open행사를 합니다

 

 

 

 

   순례자가 너무많아 뒷좌석에서 카메라 줌을 당겨 촬영 했습니다

 

 

 

 

 

 

 

 

 

 

 

 

 

 

 

 

 

 

 

 

 

 

 

 

 

 

 

 

 

 

 

 

 

 

 

 

 

 

 

 

 

 

 

 

 

 

 

 

 

 

 

 

 새벽일찍 경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스위덴군 버리고간 대포

 

 

1596년(16세기말)와 17세기 중반 두 차례,

바이킹의 후예인 스웨덴 군인들이 유럽 대륙을 침공한다.

 

이에 맞서서 야스나 구라 수도원장의 지휘 아래,

전쟁 경험이 없는 250명의 수도자들이 몇몇 귀족들과 병사들과 함께 결사 항쟁한다.

무기도 없이 20 대 1로 싸우는 것이다.

 

밤마다 수도원에서 나는 기도 소리(밤중 철야 기도)를 들으면서 40여일을 보낸다.

그리고 스웨덴 군인들은 사기가 떨어진다.

급기야는 "이곳은 사람이 지키는 곳이 아니다. 성령께서 지키는 곳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이제 농민과 귀족이 몰려 오고,

블랙 마돈나 앞에서 충성 서약을 한다.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바람이 일어난다. 

그리고 왕이 무릎을 꿇고 왕관을 벗어 성모님과 예수님께 봉헌한다.

 

 

"당신이 폴란드의 진정한 왕이십니다."

 

 

 

 

 

 

 

 

침략.항쟁에서 지켜준 수호자 "검은 성모화"

- 가톨릭신문 2011년 05월 08일-

매년 전 세계에서 500만 명 이상의 순례객들이 찾아오는 폴란드 최대의 순례지이며 영적 수도라 할있다.

야스나고라수도원에 보존된 검은 성모화를 보려고 수많은 신자들이 쳉스토호바를 방문한다.

 

전승에 따르면 이 그림은 성 루카가 그린 것으로 300년 동안 예루살렘에 숨겨져 있던 중

성녀 헬레나가 성 십자가를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헬레나 성녀는 이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왔고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성화를 위한 성당을 봉헌했다고 기록돼 있다.

 

검은 성모화는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 벨즈를 거쳐 최종적으로 1382년 4월

오폴레 공작 부아디수아프 오폴츠치크에 의해 쳉스토호바에 도달하게 됐다고 한다.

17세기에는 성화가 기적을 일으켜 수도원을 스웨덴 침략으로부터 구해주었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또 성화를 보관하고 있던 성당을 검은 성모화가 화재로부터 구해냈다는 설도 있다.

 

 

검은 성모화는 특히 뺨에 두 줄의 상처가 나있는 특징을 보이는데,

이것은 1430년 후스파가 성모화를 약탈하는 과정서 그림을 실은 마차가 떠나지 않자 성모화를 땅에

내동댕이쳤고 일당 중 한명이 칼로 초상화를 내리치면서 두 줄의 상처가 났다는 것이다.

 

이 성화는 처음부터 정치적 불안 시대에 살던 수도자들과 기사들 그리고 치유 은사 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병자들, 교회의 일치를 위해 기도해온 신자들로부터 큰 공경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18세기 폴란드가 독립을 지키기 못하게 됐을 때, 성모화는 모든 항쟁의 수호자가 되었고

민중들은 마리아를 해방과 국가 통치권의 수호자로 열렬히 공경했다.

현재에도 폴란드교회의 심장 역할을 하는 곳으로 주교회의를 비롯,

다양한 교회 관련 회의 심포지엄 등이 모두 이곳에서 열린다.

 

 

 

참 고

야스나구라가 순례자들의 참배수로 볼 때,

세계에서 두 번째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 신자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성모 성지가 어디냐고 물으면,

 대개 ‘루르드’라고 답합니다.

실제 통계적으로 세계 최대의 성모 성지는 단연 멕시코의 과다루뻬이지요.

연간 순례자들의 수가 2000만을 넘어 어느 해는 2500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다음이 바로 블랙 마돈나가 모셔져 있는 폴란드의 야스나구라입니다.

 연간 순례자 수가 500만이 넘는답니다.

 그 다음이 마지막 순례지 메쥬고리예로 450만에 이르고 있지요.

그 다음이 루르드로 300만 정도입니다.

야스나구라가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서입니다.

교황이 되신 후에 이곳 야스나구라를 참배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폴란드의 아들을 베드로좌로 부르신 사실은 이 성지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곳은 큰 희망의 땅이며, 나는 이 성상 앞에서 수 없이 기도하곤 하였습니다."(1979년 6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