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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동유럽)

동유럽의 로마" 체코의 프라하 (성지순례14-1)

 

 

동유럽의 로마" 체코의 프라하

 

(1993년 체코공화국와 슬로바키아공화국으로 분리)

 

천년역사를 가진도시 라하는 체코의 수도이며 
로마네스크 .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아르누보 양식까지

그야말로 건축양식의 역사를 보는 듯하다.
1992년 구시가전도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차에 걸친 세계대전과 공산주의 혁명,

 ‘프라하의 봄’이라 불리는 1968년 자유주의운동과

구 소련군의 탱크 공세까지 오랜 세파를 이겨낸 프라하는

1989년 무혈혁명으로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동유럽이 개방되자

유럽 최대의 관광도시 이다.

 

 

해마다 1억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다는 프라하!
"북방의 로마’ ·’유럽의 심장’ ·’백 탑의 황금도시’· ’유럽의 음악원’

등이

프라하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모차르트가 생전에 가장 사랑했다는 도시,

프란츠 카프카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는 마력의 도시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어느 시점에 시간이 딱 멈춘 것 같은 곳이다.

 

 

(로마는 7개의 언덕이 있지만, 프라하는 9개의 언덕이 있고  시내에 성당만 47개 )

 

 해마다 1억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다는 프라하.

그곳 프라하 성은 길이는 570m, 폭 128m로 세상에서 가장 큰 성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구시가 광장

 

 

구시가 광장의 틴 성당

 

틴 성모 마리아 대성당

 

 

 

 

드라마 '프라하 연인'에서  소원의 벽으로 나왔던 얀후스 동상. 그의 서거 500주년을 맞이해 1915년 광장 한가운데 세웠다. 전도연이 이 벽에 김주혁과 사랑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원지를 붙여 놓는 곳으로 유명하다.

 

 

 

 

 

 

 

드라마 "프라하의연인"의 전도연과 김주혁

이드라마 촬영으로 프라하 시장이 SBS에 감사사장 전달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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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후스 동상 

얀 후스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카를 대학 총장을 역임하였다.

당시 모라비아 지역을 토지 80%가 성직자들의 손에 있었고,  많은 부정부패를 저지르면서 부를 축척해 나갔다.  심지어는 미사때 서민에게는 빵만 제공하고 포도주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 공분을 샀다. 귀족과 성직자만 빵과 와인을 줬다. 

 얀 후스는 이것을 보다 못해 기독교 개혁을 외쳤다.

“하느님의 말씀은 성경 속에 있는 것이지 교황의 입 속에 있지 않다.”

재산을 농민들에게 돌려주라고 비판하다가 파문 되고.

 화형을 당한 체코의 신학자였다.

 

화형대에 불이 붙기 직전 후스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지금 거위 한 마리를 불태워 죽인다. 그러나 100년이 지나지 않아 백조가 나타날 것이다.” 자신이 심은 개혁의 불씨가 100년 안에 거대한 불길로 타오를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실제 거의 100년 만에 ‘백조’가 나타났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다. 후스가 화형 당한 게 1415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게 1517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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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스’는 체코어로 ‘거위’란 뜻이다)

 동상에는 "진실을 사랑하고, 진실을 이야기하고, 진실을 지켜라" 라고 새겨져 있다

 

  

 

이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게 되고 신성로마황제 루돌프 2세는 보헤미아에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황제 칙령을 발표하지만 얼마 후 그가 죽으면서 칙령은 무효화 되었다. 이에 반발한 신교도들은 프라하성으로 몰려가 황제가 임명한 2명의 공직자와 비서관을 창밖 15m에 던지는데 이 투척사건이 유럽을 전쟁의 공포로 몰아 넣은 30년 전쟁의 시발점이 된다.  화가 난 합스부르크가는 용병까지 투입해 진압을 하게 되는데 당시 귀족, 군인, 농민 대표 등 27명을 구 시청광장에 참수시켜 화약탑에 10년간 걸어 놓았다고 한다.

 

시청사 입구 문에는 당시에 처형당한 27명의 명판과 그 앞에 27개의 하얀 십자기와 1621년 6월 21일을 새겨 놓았다

 

청사 귀퉁이 부분은 그당시 파괴된 형태를 그되로 보존되고있다.

 

 

 둘이 타고 다녔던 마차는 변함없이 광장을 지나 다닌다.

 

 

 

 

 

 

 

 

 

 

성 미쿨라쉬(니클라우스) 성당

 

 구시가 광장의 명품거리는 한때 '김일성 거리'로 불리기도했는데

체코가 공산주의 시절때, 기차를 타고오는 김일성을 기쁘게 하기위해

매스게임과 꽃길까지 준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체코인들은 한국을 떠올릴때 북한을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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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유명한 크리스탈 가게

 

 

 

 

 

 

 

 

 

 

 

 

 천문시계구시청사에 인파가 몰리는 이유는 은 바로 오를로이 천문시계 때문이다. 당시 프라하 대학 수학교수인 하누쉬와 조수 미쿨라세가 함께 만들어 시청사에 걸었는데 당시 프라하 시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시계주문이 쇄도하자 시의회는 시계를 독점하고자 음모를 꾸민다. 아누쉬가 열심히 일하던 밤 복면을 쓴 3명의 자객이 그를 묶어 놓고 불로 달군 쇠꼬치로 눈을 찌른다. 폐인이 된 하누쉬는 마지막으로 시계를 만지겠다고 요청했고 그가 손으로 천문시계를 어루만지자 시계는 갑자기 멈춰 버

 

위쪽 시계는 칼렌다륨으로 천동설의 원리에 따른 해와 달과 천체의 움직임을 묘사했고 아래플라네타륨은 12개의 계절별 장면을 묘사했다.그러니까 위쪽은 시계, 아래쪽은 달력으로 보면 된다.  

 

 정시가 되면 칼렌다륨 위쪽 창문으로 해골이 나타나고 그 뒤로 12명의 사도들이 창문을 통해 지나간다. 윗쪽 황금색 닭이 나와 울리면 문이 닫힌다. 나팔을 불면 전망대 위에서 나팔을 불게 된다.

 

 

 

 

 

 

 

 

 

바츨라프 광장  

 

이곳은 체코의 근현대사 역사를 간직한 현장으로  20세기 초까지 시장이었다가 1차 세계대전후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몰락하면서 체코가 독립을 얻게 되었는데 바로 이곳 바츨라프 광장에서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1948년에는 공산당 장악하여 사회주의 공화국이, 1968년 '프라하의 봄' 때 소련군의 탱크부대에 맨몸을 맞서 싸운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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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의 수호신인 성 바츨라프 기마상

 

 

 길이 750m, 폭 60m거리로 프라하 신시가지 최대의 번화가다

 

 

 

1989년 공산정권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던 곳으로 벨벳혁명의 중심지로 공산주의 정권의 종말을 고한 역사적 현장이다. 그때 등장한 인물이 하벨대통령이다. '벨벳'이란 조용한, 평화적인 의미의 형용사로 무혈혁명의 동의어다. 당시 시민들은 열쇠와 꽃을 경찰에 꽂아줌으로써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체코의 민주화를 이뤄낸 성지다

 

 

 

1968년프라하봄때  소련군탱크를 둘러쌓고있는 프라하시민

 

 

 

 

 

 

 프라하의 봄을 탄압하던 소련군에 저항하다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동판

 

 

프라하성

 

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이자,

 프라하 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중세 성 중에 가장 큰 규모이다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카를 4세 때인 14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고,

이후에도 계속 여러 양식이 가미되면서 복잡하고 정교한 모습으로 변화하다가

18세기 말에야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길이는 570m, 너비는 128m이며,

 9세기 이후 통치자들의 궁전으로 사용된 로브코위츠 궁전 외에

성(聖)비투스대성당·성조지바실리카

성십자가교회 등 3개의 교회와 성조지수도원 등 다양한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언제나 돈에서 권력과 문화가 나오듯이 당시도 마찬가지 였다.

인근 '쿠드나 호라'의  은(silver)광에서 캐낸 '은'은 

 유럽전체 통용량 의 1/3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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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궁 

 1918년부터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면서 내부 장식과 정원이 새롭게 정비되었다.

왕궁뿐 아니라 성 안에 있는 모든 건축물들이 정교한 조각과 높이 솟은 첨탑,

화려하고 다채로운 장식으로 꾸며져 있어 유럽에서도 중요한 역사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라하뿐 아니라 체코·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명소이며,

특히 성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대통령 관저

 

 

   

 

 

 

 

 

 

몽둥이를 들고 위협하고 있는 인물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타이탄의 형상으로 막강한 힘의 지배자인 합스부르크 왕가를 의미하며 밑에 깔려 고통받은 사람은 체코인이다.오스트리아 왕가가 체코를 지배할 당시 그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세운 조형물인데 한국 같았으면 진작에 없애 버렸을 치욕적인 상징을 체코인들은 쓰라린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자 이 동상을 그대로 두고 있다.

 

처음 건설될 당시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13세 중엽에 초기 고딕 양식이 첨가되고,

 이어 14세기에는 프라하 출신인 카를 4세에 의해왕궁과 성십자가교회 등이 고딕 양식으로

새롭게 건축되면서 이 때부터 체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그 뒤 블라디슬라프 2세 때 후기 고딕 양식이 가미되고,

 1526년 합스부르크왕가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다시 르네상스 양식이 도입되었다.

그러다 바로크시대인 1753년부터 1775년 사이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는데,

시작에서 완성될 때까지 900년이나 걸렸다.

구 왕궁

 

 

 

 

 

매시 정각에 근위대 교대식이 있는데 12시가 가장 화려하다고 한다.  구왕궁건물은 대통령집무실과 영빈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성 비투스 대성당

성당후면

   

 

 

성 조지 바실리카 성당

 

 

 

대통령궁에도, 맨홀 뚜껑에도 볼 수 있는 프라하문장이다.

요한묵시록에

'낮에는 문이 닫히지 않을 것이며'문이 열린 것은 문이 닫히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프라하는 밤(어둠)이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며 칼을 들고 있는 손의 의미는 문은 열려 있지만 거짓을 일삼는 자에게는 감히 넘볼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3개의 성문은 성삼위.  12개의 별자리는 12사도

 

 요한묵시록 21장을 읽어보면 

 

23절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그곳의 등불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25절 거기에는 밤이 없으므로 종일토록 성문이 닿히지 않습니다.  26절 사람들은 민족들의 보화와 보배를 그 도성으로 가져갈 것입니다. 27절 그러나 부정한 것은 그 무엇고, 역겨운 짓과 거짓을 일삼는 자는 그 누구도 도성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기록된 이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시민회관. 역대 왕의 궁정이 있던 곳으로 1911년 오늘날 시민회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프라하의 봄' 음악회장인 스메타나홀이 있으며 카페, 레스토랑이 있다. 입구 아치에 그려진 벽화가 일품이다.

 

불타바강변의 댄싱하우스. 남녀가 함께 춤추는 건물 기존 건물 양식에서 탈피한 해체주의 작품

 

카롤교에서본 댄싱건물 

 

 

 성 키릴과 메서디우스 정교회 성당

이 성당은 누구나 그냥 지나칠법한 그저 평범하고 볼 것 없는 건물처럼 보입니다....

     영화 <새벽의 7인>에서  총격장면과 지하에 매몰린 실제 주인공 레지스탕스 일원들에게

물을 넣고 가스를 살포했던 바로 그 성당 .

 

 

영화 속 저항군이 최후까지 저항했던 무대인  프라하 Resslova 거리에 있는
성 키릴과 메서디우스 정교회 성당

 

 

영화줄거리

얀 쿠비스 상사와 카렐 쿠르다 상사 등이 이끄는
체코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은밀히 암살 계획을 세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의 나치즘과 야만적인 유럽 침략을 지휘한
독일군 총사령관 하이드리히을 죽이려는 것이다.
작전 암호명은 "새벽 Daybreak."
암살 계획의 첫 시도는 실패하지만,
마침내 얀과 카렐이 이끄는 대원들은 그에게 총격을 가해 죽인다......


숫적 열세와 불리한 공간을 극복하지 못한 이들은 7명이 살아남아 성당에 집결한다.
성당의 신부들과 수녀들의 도움으로 이들은 독일군에 대항한다.
그러나 강력한 화력에 밀려 차례차례로 죽고 만다.
마침내 생존자는 2명뿐이지만, 이들은 항복하지 않는다.

지하실로 숨어든 이들이 끝까지 저항하자,
나치는 이들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지하실로 물길을 돌려 수장시키려 한다.
물길이 점차 지하실을 채우고, 무릎, 허리, 어깨까지 차오른다.
이들은 로 껴안으며 상대의 머리에 서로 총을 겨눈다.
그와 함께 새벽의 창공을 찢는 총소리가 울려퍼지고,
이들은 장렬한 최후를 마친다.
그리고 영웅적인 죽음의 여운이 남는다.

숨겨주셨던 신부님과 특공대원들의 석상과 이름들..

 

저 위의 구멍이 바로 호스를 집어 넣었던

그리고 무수한 총알 자국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답게 총알자국은 보는 이의 가슴을 두 배로 아프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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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 식당

 불법주차는 이렇게 단속(꼼짝못하게..)

 

 

 

 

 

시내를 질주하는 삼성 전차(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