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속의 이란(페르시아) 성지순례(1)
키루스는
2.500년전(BC559년) 이란 북서쪽의 작은 고대국가인 메디아의 왕으로써
남쪽의대국 바빌로니아를 정복 페르시아의 초대황제가 되었고
포로들에게 종교적 관용을 베풀었다.
이정책으로 유다인들은 가나안으로 돌아갈수있었고,
예루살렘성전 재건도 허락받았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네부카드네자르가 에루살렘에서 가져다가 자기신전에
두었던 주님의 집 기물들을 꺼내오게하였다.
그런뒤 재무상 "미트르랏"을 시켜 유다 제후 "세르바차르"에게 넘기게하엿다
품목은 금접시 30개 은접시1.000개 ....(에즈 1.7-10)
그리고 성전을 재건하는것도 도와주었다 기초공사비는 왕실 에서 부담하도록 하였다.(에즈 6.4)
예언자 이사야는 키루스를 메시아라고 선언했다
주 야훼께서 당신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기름부어 선택한자" 라고하였다.(이사 45.1-3)
키루스황제
2500년전 세계 중심, 페르시아 왕도 페르세폴리스
페르세폴리스라는 말은 그리어스로 '페르시아의 도시'를 뜻합니다.
기원전 336년에 즉위한 고대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 다리우스 3세가왕궁을 지으면서 만들어뒀던 것인데 궁은 미완성인 채 6년 뒤 기원전 330년 동방 원정에 나선 알렉산더대왕에게 패망하면서 묻혀 있다
모래 속에 묻혀 있던 페르세폴리스를 본격 발굴해낸 것은 1931년 시카고대 동방연구팀입니다
알렉산더대왕은 그리스 아크로폴리스가 페르시아군에게 불탄 것을 복수하기 위해
페르세폴리스에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페르세폴리스 전경.
'백 개의 기둥이 있는 궁전'의 입구
페르세폴리스 복판 정방형 터엔 100개 기둥이 주춧돌만 남아 있습니다.
크세르크세스 1세 때 착공해 아들 대에 완성한 곳으로왕의 알현장이나 회의장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주춧돌만 깨끗이 남긴 터가 바로 보물창고 었습니다.
주춧돌과 사방 벽 기단을 빼고는 목조건물이어서 모두 불에 타버렸습니다.
알렉산더대왕은 그리스 아크로폴리스가 페르시아군에게 불탄 것을 복수하기 위해
페르세폴리스에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물론 창고에 가득했던 보물을 실어낸 뒤였습니다.
이곳에 있던 보물이 얼마나 많았던지알렉산더 군은 당나귀 1만 마리와 낙타 5천 마리를 동원해 실어냈다고 합니다.함대가 이 보물들을 마케도니아로 한꺼번에 부려놓자
마케도니아에는 엄청난 인플레가 발생했답니다.
먹을 것보다 보물이 훨씬 더 많아졌으니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키루스 (고레스)황제의 무덤
키루스황제의 비문
기원전 330년 경 알렉산더 대제가 페르시아를 점령하고 키루스 왕의 궁을 불태우고 나서
내친김에 키루스의 석묘를 파헤치기하기 위해서 왔을 때 그 글이 눈에 띄기에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통역관은
"나 고레스는 한때 세계를 지배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땅이 다른 왕에 의해서 점령될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점령자여 그대도 언젠가는 누구에겐가 점령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 묘를 건드리지 말아 주시오"
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이 소리를 듣고 알렉산더 대왕은 말에서 내려 자신이 입고 있던 왕복을 벗어
카루스의 묘에 덮어 주었다고 한다.
아마 그 유명한 알렉산더대왕의 유언 "내 관에 구멍을 뚫어 두 손을 밖으로 내 놓아라"
는 말도 카루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
천하를 손에 쥐고 흔들던 카루스 대왕도 알렉산더 대왕도 모두 죽어 흙에 묻혀 버렸다
키루스의 칙령"폐르샤 황제 키루스의 칙령이다.
하늘을 내신 하느님 야훼께서는 세상 모든 나라를 나에게 맡기셨다.
그리고 유다 나라 에루살렘에 당신의 성전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지워 주셨다.
그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 가운데 있는 당신의 모든 백성과 함께하시기를 빈다.
누구들지 원하는 자는 돌아가라."
키루스왕 칙령 점토판 실린더
바빌론의 포로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키루스 실린더'
이 23cm짜리 '키루스 실린더'는 인류 최초의 인권문서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유물이지만
영국인이 출토해 그동안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가 ,2000년 이란 전시 후 되돌려받기로 하고
대여했는데 이란이 돌려줬는지는 관련 기사가 없어서 불분명..... .( 대영박물관 소장)
악메다 궁 박물관에 있는 간즈나메 석벽에 새긴 글
'모든 나라의 문'(크세르크세스 문).
날개를 달고 사람의 얼굴을 가진 황소상이 지키고 있다.
다리우스 황제
키루스는 두아들이 일찍죽어 왕위를 계승치못하자 왕실"경호책임자"가
왕위를계승하여 황제가되었다 그가 유명한 다리우스황제이다 .
그도 키루스의 정책을 이어받아 주민의 종교적 관습을 존중하고
예루살렘재건을 추인하고 제도적으로 도와주라는 법령을 내렸다(BC519년)
간즈나메 다리우스왕의 아들 크세르세스왕 비문
크세르크세스 비문
"나는 크세르크세스다 나느 대왕이며. 왕중의왕이다. 제국의왕이며.모든종족의왕이며
아케메네스의 왕이다. 다리우스의 아들로서 아버지를 이어 이곳에 페르시아를 건설했다"
라는명문이 3가지 언어( 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바빌론어로 )로 새겨져있다
낙쉐로스탐(왕들의 암벽묘)
낙쉐로스탐 가는길
낙쉐로스탐은 황랑한 들판에 솟아 있는 바위산에 있습니다.
높이가 150m나 되는 거대한 절벽에 고대 페르시아 왕조의 네 왕이 잠들었습니다.
1.다리우스1세.
2.아들크세르크세스.
3 .손자아르타크세르크세스.
4 .다리우스2세황제
다리우스1세의 묘
십자형으로 파낸 석묘는 기둥을 세운 왕궁의 모양으로 해놓았습니다
석굴묘 입구는 왕궁의 문처럼 해놓았습니다
석벽 아랫부분에 새긴 부조가 사람 키 몇 배에 이를만큼 어마어마한 석묘입니다.
다리우스1세묘의 부조 (벽그림)
무릎을 끓고 목숨을 애걸하는 동로마 황제 발레라누스 (뒤에 처형당함)
다리우스1세와 크세르크세스1세 부자는 고대 페르시아의 전성기를 이끈 왕입니다.
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이 아르타크세르크세스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1세의 서자가 다리우스2세입니다.
모두 4대가 한 곳에 묻힌 셈입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묘(벽그림)
다리우스의 손자 "아르타크 세르크세스"왕이 사제 에즈라와 총독 느혜미야를
보낸뒤에 성전재건을 완성하였다(에즈 7.11)
아르타크세르크세스 묘의 부조 (벽그림)
아들 크세르크세스의 묘
크세르크세스의 묘의부조 (벽그림)
다리우스2세묘
다리우스2세묘의 부조 (벽그림)
다리우스황제
다리우스1세 (기원전 549 – 485)은
을 통치한 황제이다. 아케메네스 왕조.
그는 뛰어난 행정가로 페르시아 제국의 행정제도를 개선하고 법률을 제정했으며
대규모 건축사업과 도로를 정비등 을 위대한 건축물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스 본토를 침공했으나 마라톤 전투에서 패했다
그는 징병제를 실시하고,군인들에게 약탈이나 전리품 대신 봉급을을 지급하는등
군대를 개혁했고 효과적으로 군대를 지휘할수 있었다.
그는 페르시아에는 노예가 없다고 하며 건축물을 건설 할때 인부나 노동자에게 일정한 임금을
주고 일을 시켰는데이것은 당시 고대의 관습에서는 획기적인 일로 여겨진다.
그리고 급여를 신분에의거 주지않고 경력과 일한시간에 따라 지급하였고
여성의 출산휴가를 최초로 실시하였다고한다
자국어(페르시아어)를 표준어로 사용치않고 통용되는 아람어(이스라엘의 일상어)를
사용토록지정 (히브리어는 종교어)emd 철학과 도덕 정치로 대제국건설하였다
조로아스터(배화교)의 시조는 아브라함이라고하며
당시 아람어로 하늘의 하느님이란 호칭이 최초로 등장(구약)했다고한다
*주원준박사의 구약이야기에서.. (2012월12월 평화방송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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