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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용성당(성지순례.행사)

해미성지

 

 

해미 순교성지

충남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해미순교성지

 

 

 

 

천주교 성지 해미순교성지 ( )는

1866년(조선 고종 3) 병인박해() 이후 1882년(고종 19) 사이에 진행된 천주교 박해 때

충청도 각 고을에서 붙잡혀온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이 생매장당한 곳이다.

그래서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숨져간 '무명 순교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1985년 해미성당이 창설된후 순교성지 확보 운동으로 꾸준히 모금을 해

1998년말에 생매장 순교성지인 약 7천평을 사들였다고 한다.

이후 2000년에 들어서 기공식을 갖고 기념성전을 건립하고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기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해미천 옆에 생매장당한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오른쪽에 보이는 높은 탑인

높이 16m의 '해미순교탑'이 건립되어 있다.

 

 

 

 

대성당을 지나 유해발굴지로 향한다.

 

여숫골이라는 이름의 시작은

당시 죽음을 앞둔 천주교 신자들이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기도를 하였는데,

마을 주민들이 이 소리를 '여수머리'로 잘못 알아들어 이곳을 '여숫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렇구 말구, 기쁜 마음으로 내 목숨을 천주님께 바치는거야"

 

 

순교기념 전시관

그 벽면에는 140여 년 전 해미의 순교자들이 걸었던 생의 마지막 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해미의 첫 순교자는 1800년 1월 9일에 장살형으로 순교한 인언민 (마르티노)와 이보현 (프란체스코)다.

1791년(정조 15)에 일어난 신해박해때에 면천에서 체포된 박취득 (라우렌시오)가

해미 관아로 이송되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처벌은 1800년을 전후로 시작되었다.

 

이후 한국의 첫 번째 신부인 김대건(안드레아) 의 증조부 김진후(비오)를 비롯하여,

덕산·당진·면천 등지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계속 순교하였다.
특히 1866년부터 시작된 병인박해 동안에는 서산·해미 지역은 물론 홍주·예산·신창 등 내포 전역을 넘나들며

잡혀온 신자들이 순교하였는데, 기록상으로 이 시기의 순교자만 무려 122명에 이른다고 한다고 한다.

관변 기록과 천주교 측 증언록들을 토대로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해미에서 처형된 순교자는 179명에 이른다.

하지만 무명 순교자의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순교 자리개 돌

 

길이가 4.2m인 너른 이바위가 자리갯돌이다.

피의 제사상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돌은

해미읍성 서문밖 수구위에 놓여있던 돌다리로

병인박해때 신자들을 자리개질로 처형했던 사형도구다

 

참 잔인한 방법인데 돌다리 위에서 죄수의 팔다리를 잡고 들어서 메어렸다고 한다.

여러 명을 눕혀 놓고 돌기둥을 떨어뜨려 한꺼번에 죽이기도 하였는데,

 

혹시라도 꿈틀거리는 몸뚱이가 있으면 횃불로 눈알을 지져대기도 하였다고 한다. 맙소사

 

 

순교 기념물이 이 바위는

그동안 서문밖 순교지에 보존중이였는데 이곳으로 2009년에 옮겨 보존하고 있다

 

 

 

진둠범

많은 숫자의 죄수들을 한꺼번에 죽이면서 시체 처리의간편함을 위하여 생매장형이 시행되었는데
해미 진영의 서녘 들판에 십 수 명씩 데리고 나가서, 아무 데나 파기 좋은 곳을 찾아 큰 구덩이를 만들어

한마디 명령으로 산사람들을 밀어넣어 흙과 자갈로 끌어 묻어버렸다.

 

또한 생매장형이 시행되면서

여름철 죄인의 수효가 적을 경우에는 사령들이 번거로움을 덜기 위한 방법으로

개울 한가운데에 있던 둠벙에 죄인들을 꽁꽁 묶어 물속에 빠뜨려 죽이는 수장 방법이 사용되기도 했는데

해미 지역 외인들을 천주학 죄수들을 빠뜨려 죽인 둠벙이라 해서 죄인 둠벙이라 부르고 있었으나

현재는 이름조차도 변해 진둠벙이라 불리고 있다고 한다.

 

 

노천성당

 

 

 

 

 

 

 

 

 

 

 

   

 

 

 

 

 

 

 

해미순교탑

 

 대성당 성전으로 향한다.

 

 

 

 

성전벽에는 순교자들의 박해당시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는 아픔이 있는 대천 갈매못성지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는 국내에서 유일한 바닷가 옆에 있는 천주교성지인 갈매못성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갈매못은 병인박해 때에 군문효수를 당했던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 위앵 민 마르티노 신부, 

오메크로 오 베드로 신부와 황석두 루가 회장

그리고 장주기 요셉 회장과 그 밖의 수많은 무명 순교자의 피로 물든 처형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