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갈매못 성지(聖地)
갈매못성지는 한국에서 유일한 바닷가 순교지이다.
이곳 갈매못을 처형장으로 택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당시 오천항은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이곳 오천항에 충청수영이 설치되어
군함 1,000척 및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던 군사요지였다.
1846년, 프랑스 함대 3척이 기해박해(1839년) 때 희생된 프랑스 신부들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이곳 외연도에 정박해 있다가 항의의 서신을 두고 떠났다.
조선은 이를 영해침입으로 간주하고 감옥에 갇혀 있던 김대건 신부의 처형일을 앞당겼다.
두번째는, 고종의 국혼을 한 달 앞두고 한양에서 피를 보는 것은 좋지 않다는 무당들의 말을 듣고,
한양에서 250리 떨어진 이곳 오천 모래사장을 처형장으로 택한 것이다.
갈매못은 병인박해 때에 군문효수를 당했던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 위앵 민 마르티노 신부,
오메크로 오 베드로 신부와 황석두 루가 회장,
그리고 장주기 요셉 회장과 그 밖의 수많은 무명 순교자의 피로 물든 처형장이었습니다
갈매못,,,
이는 순교지가 있는 오천면 영보리 뒷산의 산세가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과도 같아 갈마연이라 불렸던 것에서 유래한다.
야외제대
이곳은 예전에 성당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지금은 기념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처형장면
잘린 목을 장대에 걸어 모든 사람들이 보게 하였다.
한번에 목을 쳐내지 않아 사지가 뒤틀리는 고통속에서 죽어갔다.
그날의 참혹함이 이 그림 한장에 모두 담겨져 있는 것 같다.
병인박해 때에 군문효수를 당했던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상입니다
윗쪽으로 올라가는 길 난간에 14처 십자가의 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순교하신 다블뤼안 안토니오주교, 위앵 민 마르티노신부, 오메크로 오베드로 신부등 성직자 3분과
당시 조선교구 교구장 밑에서 복사를 하였던 황석두 루가회장, 베론학당 주인인 장주기 요셉회장등
약500여명의 무명 순교자들이 병인 박해때인 1866. 3. 30. 성금요일 처형을 당한 자리로서
목을 쳐서 죽일때 현, 갈매못의 성지 건너편에 있는 외연도를 바라보며 목을 쳐서 처형 당하였고
해가 넘어가는 석양을 향한것을 연상케 하기 위해
승리성성당 제대 뒤편에 스테인드 글라스 문을 열면 하루 햇살 낙향 방향인,
오천만이 한눈에 보이게끔 뜻있게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승리의 성모성당
성체조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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