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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북유럽.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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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한자동맹의 맹주인 함부르크(독일2) 중세 한자동맹의 맹주인 함부르크 1,200년의 역사를 가진 2011년 유럽 환경수도 중세 한자동맹의 맹주 1,200년의 역사를 가진 2011년 유럽 환경수도인 함부르크는 북해로 흐르는 엘베강 하류 양쪽 강안(江岸)을 끼고 발달한 도시로 독일 제2의 도시이자 가장 큰 무역항을 가진 도시로 상공업이 융성하다. 천년 고도(古都)라는 말이 함부르크에 딱 들어 맞아서 중세 이전부터 도시로 발달했으며 유명한 북유럽 한자동맹의 중심 도시로 성장하며 번영을 누렸다. 함부르크항은 대양으로 열린 큰 항구임에도 불구하고 북해(北海)에서 부터 엘베강 물줄기를 따라 약 100km 이상 들어가야 하는 강안(江岸)의 항구도시로 먼 바다를 항해한 후 함부르크항으로 들어가는 선원들이 성미카엘교회의 높이 132m 바로크양식 첨탑을 보고..
안데르센의 나라 덴마크 (2) 크리스티안보그성(城)크리스티안보그성은 18세기 말까지는 왕궁이었더누 곳인데,1794년 화재가 나면서 왕실은 다른 곳으로 옮겨 가게 되고새로운 궁전을 지었지만, 그 후 또 화재가 발생해20세기초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지금은 국회의사당, 총리실, 대법원, 왕실 접견실 용도로 쓰이고 있는데세계 유일, 국가의 입법, 행정, 사법 기관이 한공간이 집결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궁전 건물은 코펜하겐의 창설자 압살론 주교가 1167년에 세운 성채터 위에 건설된 것으로18세기 말까지는 왕실의 거처로 사용되었으나 1794년 화재로 궁전이 불타버려서 아말리엔보르 궁전으로 왕실이 옮겨갔으며 1828년에 새로운 궁전이 지어졌지만 프레드릭 6세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고 별장처럼 사용했다고 한다.    크리스티안스보르..
동화와 전설의 도시 독일 브레멘 (독일1) 동화와 전설의 도시 브레멘 베저(Weser)강 하류의 항구도시이며, 그림 동화의 브레멘의 음악대로 유명한 곳이다. 구시가는 아직도 18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옛 향기를 느낄 수 있고 특히 붉은 지붕과 벽돌의 경관이 아름답다. 상거래소 뒷편, 뵈처거리(Boettcher Strasse)는 화랑, 골동품, 서점 등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매우 흥미롭다.유럽 북부와 북동부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1,200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이다. 14세기에 한자 동맹에 가입하면서 번영하기 시작하여 화려한 상업중심지로 성장했다. 현재는 브레메하펜과 함께 독일의 16개 주중에서 가장 작은 주를 이루고 있다. 브레멘 시장광장 전경 마르크트 광장 한자동맹 도시인 브레멘의 구시청사와..
풍차의나라 네델란드 (암스텔담). 네델란드 국기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은 13세기 어민이 암스텔강에 둑을 설치하고 정착하게된것에서 유래한다 암스텔(amstel)강의 "둑"이란 뜻이다 해양무역의 황금기인 17세기때부터 부체꼴 모양의 운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도시는 운하를 연결하는 500여개의 다리가 볼만한 도시로 세계적인 무역, 관광도시 이다 이곳에는 담광장에 있는 왕궁, 제2차세계대전비. 신교회.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의 집이있다 풍차의 마을 잔세스칸스 암스텔담시내의 운하 암스텔담시내 Anne Franke huis(안네 프랑크의집) (모든민족의 어머니성당) 성모님은 1945년에서 1959년사이에 암스테르담 이다 페르데만 에서 발현하셨다 그때 성모님은 "지금이시대에" 당신을 "공동구속자 , 중계자,변호자"로 인정 할것을 요구하..
독일 함부르크 - 덴마크 코펜하겐 (열차-페리승선 -열차) 독일 함부르크 - 덴마크 코펜하겐 함부르크에서 코펜하겐 가는 열차, 통째로 페리속으로... 독일 함부르그에서 코펜하겐으로 가기 위해서는, 해협을 건너야 하는데, 그 구간에서 기차를 통째로 페리에 실어서 건너고 다시 바다를 건넌 후 기차를 내려서 가는데, 페리에 기차를 싣고는 기차에서 다들 내리게 한 후 , 페리에 승선하게 했다. 함부르크에서 코펜하겐 가는 열차, 기차가 이렇게 페리에 올라탔다... 함부르그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1시간 반쯤 갔을까? 뭐라고 안내 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이 주섬주섬 손가방을 챙기는 사이 열차가 배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열차가 멈추자 내려서 배 속에서 위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차에서 내리니까 기차 승무원 아저씨가 기차를 칸칸이 잠그더라. 위층 갑판 위로 올라가니 이런 바..
간판도 상호도 없는 대형 기념품 수퍼마켓(상테 페테르부르그9) 간판도 상호도 없는 대형 기념품 수퍼마켓 이렇​게나 큰 기념품 가게는 처음 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명소피의 사원과 네바강 북안 베드로바울요새를 배에 그린 마트료시카도 있습니다 파베르제의 달걀. 알렉산드르 3세의 부탁으로 만들기 시작하여 진품이 42개 뿐이며 진품은 1개 1억을 호가한다는 러시아의 상징인 부활절 보석달걀 기적의 성모 이콘 도스토예프스키 자주 이용했다는 식당앞 동상 특이한 쓰레기통 러시아 결혼식에서 많이 쓰이는 고급 리무진 헬싱키 - 상트 페테부르그(핀랜드역?)도착
니콜라이궁 식당 에서 멋진 점심식사 (상테 페테르부르그8) 니콜라이궁 식당 에서 멋진 점심식사 안마당을 지닌 ㅍ 자 3층 궁전은 1861년 니콜라이 1세의 세째 아들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저택으로 지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수석 궁정 건축가였던 안드레이 스타켄슈나이더가 10년이나 공 들여 르네상스-바로크-고딕을 버무린 절충식 복고주의 건물입니다. 1830년대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왕실-귀족 저택을 열 개나 설계한 상류사회의 스타 건축가였고 황금 공작시계로 유명한 파빌리온홀을 비롯해 에르미타주의 여러 아름다운 방도 꾸몄지요. 니콜라이 대공은 러시아 군 총사령관까지 오르며 크림전쟁, 터키전쟁을 비롯해 숱한 전투에서 용맹을 떨친 군인이었지만 공연과 무도회와 파티와 만찬을 즐기느라 재정 상태가 나빠져 그가 죽은 뒤 니콜라이궁은 제국 사법부 소유로 넘어갔고 189..
황제의 피 위에 꽃처럼 핀 그리스도 부활 성당 (상테 페테르부르그7) 황제의 피 위에 꽃처럼 핀 그리스도 부활 성당 그리스도 부활 성당은 일명 으로 불린다. 네프스키 대로 카잔 성당 맞은편 그라예도프 운하변에 위치해 있다. 1881년 3월 알렉산드르 2세 차르는 겨울별궁으로 가기 위해 미하일로프 궁전을 나와 마차가 그라예도프 운하 기슭에 도착했을때 단체 소속의 대학생 2명이 던진 폭탄에 즉사하게 된다. 황위를 이어받은 알렉산드르 3세는 선대 황제가 피를 흘린 그 자리에 성당을 짓게 했고, 성당은 1883년 시작되어 24년만인 1907년 손자 니콜라이 2세 때 완공되었다. 건축비는 왕실 돈과 귀족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했고 일반 신자를 받는 교회가 아니라, 알렉산드르2세를 추모하고 기리는 왕실 교회로 썼답니다 성당의 이름은 황제의 부활을 기리는 의미에서 그리스도 부활 성당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