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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발칸반도9국)

발칸 평화의 상징 보스니아 모스타르 (보스니아-2)

 

 

발칸 평화의 상징 보스니아 모스타르  구(舊)시가  

 

"걸어서 세계 속으로"’ 2010.4.17일  KBS 방영)

 

구 유고슬로비아가 해체되고 독립한 국가
다양한 종교, 복잡한 민족이 얽혀 사는 곳
내전의 아픔을 간직한 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걸어서 세계 속으로’ 200회 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찾아서 .....

 

 

                                              화해의상징 모스타르의 다리(세계문화유산)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라고 불리는 

이다리는 4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 모스타르의 상징이자 

                                   보스니아 내 민족 간 화해를 염원하는 징표이다.

 

고대 로마 제국이 동·서 로마로 분열될 때 그 경계선이 되었던 보스니아 지역에는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가 함께 전파되었고,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 이후에는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 지역은 같은 슬라브족들이 살고 있지만 강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가톨릭의 크로아티아인과 이슬람의 보스니아인이 다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문화를 갖고 있기에..]

 

 때로는 갈등과 전쟁으로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1996년 내전이 끝난 후 서로의 종교와 문화를 인정하면서

도시가 안정을 되찾으니앞으로는 함께 아름다운 이 다리를 사랑하면서..

전쟁없이 늘 평화롭게 살기를 바랍니다

 

 

 

 

 

 
높이 20m의 '스타리 모스트'는 1566년 오스만투르크 제국 통치 당시 뛰어난 장인이었던

미마르 하즈루딘이 재건축한 것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보스니아 내전이후 크로아티아계가 크로아티아와의 합병을 추진하면서 양측간의

충돌이 격화됐고 1993년 9월9일 크로아티아계에 의해 다리가 폭파됐다.

 



폭파된 다리의 모습(구입한 엽서를 스캔복사)

 

 

.이후 다리는 1997년 나토 평화유지군이 유네스코의 지원하에 네레트바강에서 다리의 부서진 조각들을 찾아내었다.
다리에 쓰인 1천88개의 암석은 모두 전통 공구와 기법을 이용해 2004년 7월 재건축됐다

 



네레트바강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주로 무슬림을 믿는 사람,
왼쪽은 카톨릭을 믿는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


 

왼쪽은 카톨릭

 

오른쪽은 무슬림  

 

  

네레트바강 건너 오른쪽 무슬림지역16세기 지은 이스람사원과  터키식 건물이 늘어선 거리에는  수공예품상점.

카페.레스토랑이 늘어서 있고 항상  여행객 으로 북적이고 ....

 

  

 

   

   

 

  


 

 

 

  

 

  

 


 

 

 

 

 

 

 

매년 7월 마지막 일요일에는 높이 24m의 다리 위에서 다이빙 대회가 열리는데,

700회를 넘겼다고 .....

 

 

 

 복원한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인 모스타르 다리에서

다이빙를 하려는 사람과 그 모습을 구경하는사람들로 다리위가 인파로 가득하다.

이곳에서는 해매다 다이빙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다리끝에 있던 'Don't forget' 기념석 윗쪽으로 다이버 협회 사무실이 있다.

다이버들은 여행객들을 위해 스타리 모스트의 가장 높은 곳에서

네레트바 강으로 다이빙을 한다.물론 돈을 받고 하는 것이겠지만,

여행객들을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를 선사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매일 수차례씩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맨몸으로 다이빙을 하기도 하는데

모스타르의 새로운 명물이 되었다고‘

 

 

 

 

 

 

 

   

 

 

 

    

 

 

 

 

 

Don't forget 93. (잊지 말자, 93년의 아픔을)


 

 

1993년 내전으로 페허가된 도시

 

내전의 상처로 남아 있는 총탄 자국


 

 

 





페허속에 우리 LG  상표가 보이네요


 

이들의 염원처럼 다시는 전쟁으로 인한 슬픔이 없는... 평화만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에 소개되었던.. '스타리 모스트'만 그리는 화가 아저씨

 

 

 


중세 터키식건물 과 조약돌 거리


 

다리 동쪽 이스람을 믿는 보스니아인 마을에는  이스람사원 모스크와

거리 바닥에는 조약돌이 촘촘히 박혀있어 조약돌거리 라고 부른다    

 

 

   조약돌 조차  문화재로 인정 받았다고 하니...^^*

 

 

거리에 늘어선 수공예품점들

 

조약돌 거리

 

 

 

 

 

 

 

포탄으로만든 생활용품들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의  국경선인 드리나강 다리

 
 

 

 

 

 

보스니아 노벨문학상 작가 "이보 안드리치"

 

 

  

 

 

 사라예보 가는길(차창밖 풍경)

 

 다나르-알프스산맥(국립공원)

 

 

 

 

 

 

 

  

 

 

 

 

                           

 

 

 

 

 

"걸어서 세계 속으로’" 

 (2010년 4월 17일 (토) 오전 10시 KBS )

 

 

 

세 개의 다리를 건너다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쟁의 시작점, 사라예보 라틴다리

    

 

다리 위에서 울려 퍼진 총성이 1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동∙서 문명, 다양한 종교가 교차하는 지점,

사라예보는 두 번의 세계대전이 지나간 자리에 내전이라는 상처를 한 번 더 입었다.
‘95년에 끝난 내전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상처를 감춘 채, 다시 이웃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마을 곳곳과 동계올림픽 개막식장까지 빼곡히 채워진 묘지들이 25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내전의 아픔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공존과 화합의 상징, 드리나강의 다리.
  

 국경보다 두터운 단절의 벽으로 존재했던 드리나 강.

한편에는 터키계 이슬람 세력이, 다른 한편에는 세르비아 정교회 세력이 살고 있다.

400여 년 전에 세워진 다리는 양쪽의 이질적인 문화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였고 대립의 장이자 평화의 상징이다.
 발칸반도의 대문호 이보 안드리치가 소설‘드리나 강의 다리’를 통해

염원했던 평화는 어려웠던 것일까.

다리는 말없이 공존과 충돌로 얼룩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지켜보고 있다.

 

   오래된 다리라는 뜻의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     

 

이 아름다운 다리도 1993년 내전을 겪으며 붕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다리는 끊어졌고 강의 양쪽은 단절되었다.

그리고 2004년 다시 연결된 이 다리를 통해 사람들은 평화를 꿈꾸며 다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오래되지 않은 오래된 다리는 그 날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