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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일본)

일본 가사키성지순례3 (원폭평화공원)

 

 

사가사키시

(長崎市)

 

나가사키시현(縣)청의 소재지로 인구가 겨우 40여 만에 불과한 소도시로

 굴곡진 역사의 중요한 현장이다.

1945년 8월, 원폭이 투하되어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으며,

 좀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쇄국 정책을 일관하던 에도 막부 시대에

 일본에서 유일하게 외국 세력과 교류의 장이 되었던 곳이다

 

 

 

  

 

 

나가사키의 명물 노면 전차.

1914년부터 운행되고 있으며  수 십년 됨직한 낡은 전차들이 아직 거리를 누비고 있다.

( 일본 유일하게 자전거 도로가 없는도시)

 

 

 

 

 

사가사키 평화공원

 

평화공원 입구

 

 

 

 

평화기념상

     전체길이 10m의 평화기념상은  원폭10주년 기념일에 조각계의 권위자 키타무라사이보오씨가 제작한 청동 남신상으로 하늘을향한 오른손은 원폭의 두려움을 ,왼손은 평화를, 눈을 반쯤감은 유화한 얼굴은 전쟁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때로는

     부처의 자비, 때로는 하느님의 사랑을 나타낸다고 한다.(옮긴글)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 단체사진을 찍는데 순간 영화의 한장면처럼 느껴졌다.

 

 

 

평화기념상 한쪽에 서 있는 희생자 추모기념물.'종이학의 탑(折鶴の塔, )'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평화의 샘원폭 피해를 입은 소녀가 마실 물이 없었답니다.                         주변에 있는 물이라고는 모두 방사능에 오염된 물. 목이 마른 소녀는 그 물을 마셨답니다

.

 

 

 

 샘주변의 돌도 원폭당시 당시 검게 탄돌.

  

 

 

평화의 여신.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에 떨어진 원폭으로 24만 시민 중에 15만이 사망했답니다

 

 

 

폭심지(그라운드 제로)1945. 8. 9. 오전

폭격기 B29가 군수 산업시설이 밀집한 나가사키에. 폭격기가 투하한 4.6t짜리 원자 폭탄의 기폭 장치가 이 지점 상공 500m에서 작동하였다. 폭발의 결과로 반경 2km의 모든 건물은 완파되었고, 1 4만명  시민들이 즉사하고. 그 후로도 방사능 피폭에 의한 질환과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다. 사상자 중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도 상당수가 있었던 점을 기억해두자. 여기가 바로 원폭투하중심지, 일명 '폭심지(爆心地)'이다.

 

 

   

 

 

 원폭투하 직후에 뼈대만 남은 우라카미 성당의 일부를 이곳 공원에 옮겨놓은 것

  

 

원폭피해 자료관

 

 

 

미군기에서 촬영한 버섯구름(미군촬영)

 

1945년 8월 9일 11시 02분,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다.

당시 미국은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않을 경우 몇 차례의 원자폭탄 투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5일 뒤에  8월 15일에는  항복의사를 전했다.

 

 

 

 실물크기 원자탄모형

 

"영원한 11시2분"

 

원폭이 폭발한 오전 11시 2분을 가리킨채 멈춘  벽시계....

 

 

 손뼈와유리

원폭의 열로 인해 녹아서 엉겨붙은 유리에 사람의 손가락뼈도 엉겨붙어 있다

 

고온에 형체가 변형된 유리병.

 원폭 폭발 직후 폭심지 지표면 온도가 4000도까지 올라갔다

 

피폭으로 파손된 성물

 

피폭당시의 지층모습

 

원폭 자료실 앞에 새워진 동상(평화의 모자상)

  

 

원자폭탄 박물관입구에  한글이 보이는 안내판 

 내용은 일제식민지 당시 강제로 끌려와 노동을 당하는 조선사람이 나가사키 주변에

3만명 이상 살고 있었는데   원자폭탄에 의해 약 2만명이 피폭했다고 한다.


 


 

 

원폭자료관 앞의 중국요리집.

화교가 많은 도시라 그런가 이런 중국풍 건물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인 식당에서 (나가사키 짬뽕)

 

나가사키 짬뽕

 1950년대 가난한 중국유학생을 위해 한 중국인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특별히 준비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유학생들을 돕기 위한 방법을 탐색하다가
자신의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고 남은 여러가지 식재료를 넣어 만든 것이라고 이제는 나가사키의 명물이 되었다.

저렴하면서 많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우리나라처럼 얼큰한 맛은 없지만 시원한 국물맛이 끝내준다~!

 

..

 

 

 

 

 

 

 

387년전통의 나카사키명물 카스테라

 

 

나가사키 카스테라

 나가사키에는 외국문물을 자기들의 것으로 토착화시킨 것이 많은데
카스테라도 그 중 하나이다.
포르투갈 상인들이 들여온 것으로 '빵'이라는 포르투갈어를 일본발음으로 부르다가
조금 편하게 자기들 발음으로 만든 것이 카스테라라 한다.
 설탕조각들이 있어 굉장힌 단맛을 내고,그 부드러움이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