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의성모가 기적을 내리신 곳 "카잔성당"
상테페부르그 의 넵스키 대로를 따라 걷다 보면
코린트 양식의 기둥 94개가 4줄로 폭 59 m에 걸쳐 늘어선 반원형 회랑을 볼 수 있습니다.
파벨 1세의 명에 따라 스트로가노프 백작의 농노출신, 건축가 바로니킨이
1801년부터 10년에 걸쳐 지은 카잔 성당입니다.
카잔은 러시아 , 타타르스탄의 도시인데요,
거기서 발견된 이콘 '카잔의 성모'에게 봉헌된 성당이어서 카잔 성당입니다.
'카잔의 성모 성화' 는 13세기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서
러시아 카잔으로 가져와 보관되고 있었습니다.
1488년 타타르인들의 침략때 이 성화는 사라졌지요
이반뇌제때 카잔이 해방되고, 몇 해 후 카잔엔 큰 불이 나,도시는 잿더미가 되고 ,
수 많은 이재민이 발생하였답니다.
이재민 중 '마트로나' 라는 어린이가 있었는데, 꿈에 성모 마리아께서 나타나
불탄 도시의 어느 돌더미 밑에있는 성화를 찾으라고 하셨답니다.
마트로나가 엄마에게 말했지만, 엄마는 믿지 않았고,
성모님이 아이의 꿈에 세번째 나타나 말했으때,1579년 7월 8일 ,
아이와 엄마는 이 성화를 찾아 내게 됩니다.
이렇게 기적적으로 성화를 찾았다는 말에 수 많은 사람이 몰려 들었고
이 후로 많은 기적들이 이 성화 앞에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1612년 폴란드가 모스크바를 함락하고 있을 때,
러시아 총 주교는 대 반격을 노리던 왕자에게 카잔의 성모 성화를 모셔와,
적들과 싸우라고 하여 폴란드 군대를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카잔의 성모 성화는 러시아 국민 신앙의 중심점이 되었고
발견일인 7월 8일을 축일로 정하였습니다.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쳐들어 옵니다.
러시아 총사령관 미하일 쿠투조프가 출정하기 앞서 카잔성당에 찾아와 , 경배하며 기도한 후
모스크바까지 쳐들어온 나폴레옹군에게 온 도시를 비우는 작전을 벌여
69만 나폴레옹군은 9만3천명만 살아 퇴각합니다.
1904년 카잔 성모 성화가 있는 카잔 수도원에 도둑이 들어 이 성화를 훔쳐갑니다.
도둑은 나중에 잡혔지만, 값비싼 액자만 챙기고 성화를 잘라 불태웠다고 말합니다.
많은 국민이 앞으로 나라에 나쁜일이 생길것이라 걱정한대로 러.일전쟁에 패하게 됩니다.
카잔 대성당은 로마의 바티칸 대성당을 본뜬 네오클래식 양식의 건물이다.
이 대성당은 스트로하노프 백작의 농노 출신 건축가 바로니킨 에 의해
1801년부터 10년에 걸쳐 지어졌다고 하고
넵스키 대로 쪽으로 넓혀진 반원형의 회랑에는 코린트식 기둥이 늘어서 있는데
그 수가 94개나 된다고 한다
건물 내부에는 19세기 초의 거장들이 그린 이콘이 있는데
특히 카잔의 성모상 이콘이 유명하다고 한다.
카잔성당 앞에는 너른 광장 공원이 있는데
1860년대 혁명의 열병에 걸린 대학생들이 모여 출정 집회를 갖고 전제정치를 비판한 뒤
겨울궁전까지 행진을 벌였던 곳입니다.
카잔 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카잔 성모 상인데 진품은 내부에 있겠지만
외부 벽체에 그 복사판이 그려져 있다
이 대성당이 완성된 후 러시아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런 연유로 성당 안에는 프랑스군에게서 빼앗은 107개의 군기와 승리의 트로피 등이 걸려 있다고 한다
전면 지붕의 삼각형 박공에 황금빛 광채 같은 금속 부조가 붙어 있는데
가운데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삼각형에서
신의 섭리(Providence)를 상징하는 빛이 뿜어나오는 형상입니다.
거대한 화강암 기둥들은 양쪽 주랑까지 합쳐 전면에 94개가 늘어서 있고
남쪽과 서쪽 측면의 기둥까지 합치면 136개나 됩니다.
한 개 무게도 28톤이나 되고,기둥마다 스무 개씩 긴 홈을 파 장식했습니다.
이런 세로 홈을 가리키는 건축 용어가 관악기 이름과 같은 플루트(flute)이더군요
카잔대성당은 1917년 러시아혁명과 함께 폐쇄됐다가
1932년 엉뚱하게도 무신론을 선전하는 역사종교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갖가지 전쟁 포스터들로 선전전이 벌어진 곳도 카잔성당이지요
전면 중앙엔 돔지붕이 솟아 있는데 지상에서 돔 꼭대기까지 높이가 72m나 됩니다.
돔은 밑부분 지름이 17m에 이르고요,
돔 아래 원통 모양 부분을 '랜턴'이라고 하는데요,
이름처럼 실내에 햇빛을 들여보내는 채광창 16개가 빙 둘러 나 있습니다
둥근 벽체 위 띠 모양으로 두른 코니스엔 '예루살렘 입성'을 새겼습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온 그리스도에게 군중이 종려 가지와 올리브 가지를 들고서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라며 환호하는 장면입니다.
외벽 다른 곳에는 두 천사가 받든 등불 위에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카잔의 성모상이고 위쪽에 아칸서스 잎을 부조로 새겨 장식했습니다
성당의 상징 '카잔의 성모'를 모사한 이콘들
러시아 최초의 성인 '키에프의 성 블라디미르' 동상
988년 러시아에 정교회를 받아들여 국교로 삼은 키에프공국 대공 블라디미르 1세이지요.
러시아 역사에서 영웅적인 인물로 무공을 상징하는 칼을 왼손에,
포교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오른손에 잡고 있는데요,
십자가로 누르고 있는 상자 모양 같은 것은 이교도의 제단이랍니다.
카잔성당이 지닌 의미는 완공 이듬해인 1812년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쳐들어왔을때
러시아군 총사령관 미하일 쿠투조프가 출정하기 앞서 카잔성당에 찾아와
카잔의 성모에게 경배하며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올리지요.
쿠투조프는 모스크바까지 쳐들어온 나폴레옹군에게 온 도시를 비우는 작전을 벌여
나폴레옹군이 제풀에 물러가자 추격해 대파합니다.
69만 나폴레옹군은 9만3천명만 살아 퇴각하지요.
쿠투조프는 스몰렌스크전투에서 나폴레옹군을 무찌른 공적으로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고귀한 스몰렌스크 공작 전하'라는 영광스러운 작위를 얻습니다.
성당에는 나폴레옹군에게서 빼앗은 107개 군기(軍旗)와 승리의 트로피가 걸려
전승기념관의 성격도 겸하게 됩니다.
2차대전 때 소련 정부가 만든 쿠투조프훈장은 소련방 해체 후에도러시아 최고의 군사 훈장으로 이어오고 있고소련군이 상트페테르부르크 봉쇄 끝에 퇴각하는 독일군을 섬멸한 작전명도'쿠투조프'였습니다.우리로 치면 충무공에 해당할 국민적 영웅이지요.
나폴레옹전쟁 때 육군장관이었던 미하일 바클라이 드 톨리(1761~1818)입니다.
1808년 스웨덴과 맞선 핀란드 전쟁에 사령관으로 출정해
보스니아만 건너 우메오를 점령해 용명을 떨쳤는데요,
나폴레옹 전쟁 때는 후퇴전술을 펴 비난을 받았고
스몰렌스크에서 패배한 뒤 사령관직을 박탈당하고 쿠투조프에게 자리를 넘겨줘야 했지요.
하지만 1913년 사령관에 복귀해 이듬해 파리에 입성해 원수가 됐고
1815년에는 나폴레옹이 엘바섬에서 도망쳐 파리로 돌아오자
프랑스 원정을 지휘해 공작의 작위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굴욕과 영광을 함께 겪고 누렸던 군인이네요.
이 성당에는 나폴레옹군에게 뺏은 군기와 나폴레옹군 요새의 열쇠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카잔성당은 소련방 붕괴 무렵인 1992년에야 미사를 재개합니다.
1996년엔 러시아 정교회가 소유권을 되찾으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 교구를 대표하는 모(母) 교회가 됐지요.
그래서 카잔성당은 입장료 없이 성당 안팎을 둘러보면서도
일반인들이 미사를 올리고 참배하는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습니다.^^*
기적을 불러온다는 성모님의 이콘이 보관되어 있어 많은 정교회 신자들이 참배하는 엄숙한 곳이다
러시아 정교회의 회중석은의자 하나 없이 텅 비었습니다.
신자들이 선 채로 예배를 보기 때문이지요.
유대 전통에 따라 남녀 유별해남자는 오른쪽, 여자는 왼쪽에 선다고 합니다.
액자를 창틀처럼 짜 창문처럼 꾸민 이콘 액자 위 성체 현시대로 장식
이콘 '카잔의 성모'는 13세기 콘스탄티노플에서 만들어 러시아 카잔으로 건너온 것으로 짐작합니다.
1438년 타타르가 카잔을 점령하면서 사라졌다가
1579년 성모의 계시를 받은 소녀가 땅속에서 찾아냈다고 합니다.
러시아 정교회에선 이콘을 종교 작품으로만 여기지 않고
구세주나 성모, 성인이 출현한 것으로 보고 숭배하지요.
러시아 정교회는 카잔의 성모를 기적의 힘을 주는 이콘으로 받들어
발견된 장소에 테오토코스(성모) 수도원을 지어 이콘을 모셨습니다.
카잔의 성모는 러시아를 수호하는 대표적 이콘이 됐고
모스크바, 야로슬라프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 카잔의 성모 복제화를 모신 카잔성당이 들어섭니다.
그런데 1904년 카잔 테오토코스수도원에 도둑이 들어 카잔의 성모를 훔쳐갑니다.
도둑은 나중에 붙잡혔지만 값비싼 보석들로 장식한 황금 액자를 탐냈기에 액자만 챙기고
성상화는 잘게 잘라 태워버렸다고 진술합니다.
온 나라가 좌절과 공황에 빠져 앞으로 나라에 나쁜 일이 닥칠 거라고 걱정한대로
1905년, 노동자들 시위에 군이 발포하는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러일전쟁에서도 패합니다.
모스크바의 카잔성당
모스크바.야로슬라프 등의 여러 도시에 카잔의 성모 복제화를 모신 카잔 성당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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