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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이태리.스위스)

예수님의 수의(壽衣)가보관된 토리노성당

예수님의 수의(壽衣)가보관된  토리노성당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토리노 두오모(조반니 바티스타 성당)
     
이 건물은 1491년~1498년에 지었으며 1997년 화재로 일부 소실되었지만 복구되었다.
두오모라고 더 잘 알려진 이 대성당은 성의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수의 시신을 감싼 것으로 전해진다.
가로 1m, 세로 4m의 아마포로 십자군 전쟁 때 터키에서 발견돼
1572년부터 이탈리아 토리노 성당에 보관돼 오고 있다.
1898년 처음으로 사진을 촬영하자 육안으로 보이지 않던 ‘예수의 형상’이 나타나 ‘기적’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신앙의 대상이 돼 왔으며 수차례의 화재로 소실될 뻔 했다.
1998년도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 실험 결과 12세기경의 천으로 알려지면서
 지금은 예전의 영광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1578년부터 이탈리아의 토리노 대성당에서 특별 보관하고 있는성의의 연대와 형상 흔적의 실체를
현대과학은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교황은 이날 "성의 공개는 인류의 가슴에 조용히 속삭이는 듯한 신비로운 형상(얼굴)을
 묵상하는 하느님 자비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의 시신을 감쌌다고 알려진 '토리노 수의'가 2002년 복원 작업 이후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됐습니다.
앞으로 6주 동안 수의를 전시할 이탈리아 토리노 성당에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포함해 200만 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1898년 토리노 성당에서 성수의를 일반에게 공개 할때에 만든 포스터.
예수의 얼굴 모습은 콧수염이 있는 것으로 그렸다.
얼굴 모습 아래에는 성수의를 접지 않고 펼친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같은 이미지가 두 개 프린트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토리노 성당은 
지난 1997년 화재 피해로 종탑은 여전히 복구 중이지만 다행히
성당 최고의 보물은 무사했습니다.
예수의 시신을 감쌌다고 알려진 '토리노 수의'는 오랜 세월의 풍파와 화마 속에서도 무사했습니다.
성당에 들어서면 짧은 영상물이 상영되고,잠시 후 어둠 속에서 부드러운 빛으로 감싸진 수의가 떠오릅니다.
16세기 수녀들이 조각난 것을 붙인 수의는 화재로 손상된 뒤 지난 8년간 복원 작업을 거쳤습니다
.
직접 와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예수님의 얼굴이 분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네거티브 이미지이지만 얼굴의 굴곡과 생김새가 선명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예수님의 얼굴이라고 믿는 반면,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토리노 성당의 대주교는 관람객들에게 머리보다 마음으로 수의를 보라고 조언합니다.
진위에 상관없이 중요한 믿음의 수단이 된다는 것이 성당 측의 입장입니

토 리 노
 

토리노는 1899년 이탈리아 최초의 자동차 회사 피아트가 세워진 ‘피아트의 도시’였고 
200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자동차도시에서 관광도시로 거듭난 도시


  
토리노의 상징 몰레 안토넬리아나
토리노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에펠탑이 완공되기전만해도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현재는 영화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토리노의 수의]



 
토리노의 수의’(튜린의 수의: Shroud of Turin)는 예수의 얼굴이라고
생각되는 어떤 남자의 모습이 프린트되어 있는 린넨(세마포) 천이다.
토리노(튜린)의 수의라고 부르는 것은 이 천이 현재 이탈리아 토리노의
세례요한대성당의 로열채플에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수의(Shroud)라고 부르지만 토리노의 수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시신에게 입히는 옷이 아니다.
4.4m x 1.1m의 장방형의 한 장으로 된 세마포이다.
 마치 한 장의 침대 시트와 같다고 보면 된다.
이 세마포가 예수를 장사 지낼 때에 예수의 시체를 쌌던 것이라고 하며
그때에 예수의 형상이 세마포에 프린트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예수의 시체를 쌌던 세마포인지 아닌지를 규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그 천에 나타나 있는 얼굴 모습이 진짜 예수의 얼굴 모습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더 중요하다.
 만일 그 얼굴 모습이 진짜 예수의 얼굴 모습이라고 하면
이는 2천년전에 활동했던 예수의 모습을 최초로 짐작할수 있는 유일한 자료가 된다.
그리고 만일  토리노의 수의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모습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예수의 초상화를 그릴 때마다 토리노의 수의에 프린트된 모습을 영원한 모델로 하여
 통일되게 그릴수 있게 된다.




최초로 찍힌 수의의 음화 영상과 중세 예수님 얼굴






  토리노 수의 원색 컬러사진
 
 수의를 일반카메라 로 찍은 원색사진과

이 원색사진을 다시 포토샾 으로 음화 처리한 사진을 나란히 놓아보면.


보통사진은 얼굴부분 이 잘 안들어 나는데,음화 처리하자 얼굴 영상이 뚜렷이 나타납니다.
 

 
   토리노 수의를 펼친 원색 컬러사진


 
 




    위의 사진을 포토샾 이용해 음화 처리한 사진과 비교
 


이것이 토리노의 수의. 앞의 것은 중간부터 전신 모습을 볼수 있다.
옆에 있는 원래의 세마포에는 얼굴 모습이 희미하지만
사진 네가 필름에 나타난 얼굴 모습은 분명하다.


도대체 수의에 찍힌 얼굴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사실 세마포(린넨)를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거기에 그려진 모습이 얼굴인지
아닌지 도무지 알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여서 구별을 할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 세마포를 사진으로 찍어서 네가티브 필름을 보면 얘기가 완전히 다르다.
틀림없는 사람의 얼굴이다.
마치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다.
하기야 예수의 시체를 감쌌던 천이므로 잠시 죽어있는 예수의 얼굴 모습이 찍혔을 것이므로
눈을 또렷하게 뜨고 무슨 말을 할 것 같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실제로 처음에 수의라고 믿어지는 세마포를 발견했을 때에는
희미하나마 누리끼리한 천에 세피아(먹물)로 그린 듯한 얼굴 윤곽을 찾아 볼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얼굴 모습이 자꾸 희미해져서
도무지 알아 볼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898년 5월 28일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날 성수의에 대하여 대단한 관심이 있는 이탈리아의 변호사 겸 아마추어 사진가인
세콘도 피아(1855-1941)라는 사람이 성수의를 사진 찍기 위해  세례요한성당의 허락을 받아
성수의를 자기 집으로 가져왔다.
그는 저녁에 자기의 집에서 성수의를 사진 찍은 후
 암실에서 필름을 현상하여네가(Negative) 필름을 보니까
놀랍게도 사람의 얼굴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깜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들고 있던 사진건판을 떨어트렸다고 한다.
 피아가 이 사실을 교회의 성직자에게 보고하자 그들은 피아가 사진을 조작했다고 주장하며 믿지 않았다.
그로부터 다시는 사진을 찍기 위해 성수의를 성당 밖으로 내보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성수의에 예수의 얼굴 모습이 프린트되어 있다는
얘기가 확산되자 바티칸도 다시한번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1931년 주세페 엔리(Giuseppe Enrie)라는 사진가에게 다시 사진을 찍어보도록 허락했다.
엔리가 사진을 찍은 후 필름을 현상해보니
네가필름에서 과연 사람의 얼굴 모습이 비교적 선명하게 나타났다
이로써 피아의 주장은 신빙성을 얻게 되었다.


이 사진이 일단 공개되자 과학자, 교회관계자, 역사학자, 작가 들 사이에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여 문제의 수의가 보존되어 왔으며
또 예수의 얼굴 모습이 어떻게 프린트되었는지에 대하여 밤낮으로 뜨거운 논쟁이 불붙었다.
논쟁의 과열되자 바티칸으로서 입만 다물고 있을수 없었다.
 마침내 1958년 교황 비오12세(Pius XII)는 성수의에 나타나 있는 예수의 얼굴 모습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가톨릭 신앙의 대상으로 삼도록 하였으며
아울러 매년 ‘참회의 목요일’에 예수의 얼굴 모습이 나타났음을 축하토록 했다.
교황이 공식적으로 수의에 찍힌 예수의 얼굴 모습을 인정했다는 것은 앞으로
예수의 얼굴을 그리거나 조각으로 만들 때에 이를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과 같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의 얼굴 모습이 언제 수의에 찍혔는지에 대하여 논란을 벌였다.
혹자는 첫날 예수의 시체를 수의로 감쌀 때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했고
혹자는 예수가 부활하기 직전, 영혼이 돌아와 숨을 쉬기 시작할 때에 찍혔다고 주장했다. .
어떤 사람은 자연적으로 산화작용에 의해 수의에 얼굴 모습이 그려진 것이기 때문에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또 어떤 사람은 세마포(細麻布: 린넨)와 공기 중의 어떤 성분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그런 모습이 그려지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수의에 예수의 얼굴 모습이 있는 것을 처음으로 사진으로 찍은 세콘도 피아






교황 비오12세(1896-1958). 토리노의 성수의에 나타난 형상이
 예수의 모습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