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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용동 본당성순례 (인물사진) 팔용동 본당성순례 (인물사진)
팔용동 본당성순례 (갈매못성지) 보령 갈매못 성지(聖地) 갈매못성지는 한국에서 유일한 바닷가 순교지이다. ​ ​이곳 갈매못을 처형장으로 택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 당시 오천항은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이곳 오천항에 충청수영이 설치되어 군함 1,000척 및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던 군사요지였다. ​ 1846년, 프랑스 함대 3척이 기해박해(1839년) 때 희생된 프랑스 신부들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이곳 외연도에 정박해 있다가 항의의 서신을 두고 떠났다. 조선은 이를 영해침입으로 간주하고 감옥에 갇혀 있던 김대건 신부의 처형일을 앞당겼다. 두번째는, 고종의 국혼을 한 달 앞두고 한양에서 피를 보는 것은 좋지 않다는 무당들의 말을 듣고, 한양에서 250리 떨어진 이곳 오천 모래사장을 처형장으로 택한 것이다. 갈매못은 병인박해 때에..
팔용동 본당성순례 (해미순교성지) 서산 해미순교성지(聖地) 천주교 성지 해미순교성지 ( 海美殉敎聖地 )는 1866년(조선 고종 3) 병인박해(丙寅迫害) 이후 1882년(고종 19) 사이에 진행된 천주교 박해 때 충청도 각 고을에서 붙잡혀온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이 생매장당한 곳이다. 그래서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숨져간 '무명 순교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갖고 기성전을 건하고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기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숫골이라는 이름의 시작은 당시 죽음을 앞둔 천주교 신자들이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기도를 하였는데, 마을 주민들이 이 소리를 '여수머리'로 잘못 알아들어 이곳을 '여숫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해미순교탑 해미는 천주교 박해기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처형된 순교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라고 합니다. 특히..
해미성지 해미 순교성지 충남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해미순교성지 천주교 성지 해미순교성지 ( 海美殉敎聖地 )는 1866년(조선 고종 3) 병인박해(丙寅迫害) 이후 1882년(고종 19) 사이에 진행된 천주교 박해 때 충청도 각 고을에서 붙잡혀온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이 생매장당한 곳이다. 그래서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숨져간 '무명 순교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1985년 해미성당이 창설된후 순교성지 확보 운동으로 꾸준히 모금을 해 1998년말에 생매장 순교성지인 약 7천평을 사들였다고 한다. 이후 2000년에 들어서 기공식을 갖고 기념성전을 건립하고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기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해미천 옆에 생매장당한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오른쪽에 보이는 높은 탑인 높이 16m의 '해..
불세나의 성체기적 과 올르비에또 불세나의 성체기적 과 올르비에또 서기 1263년 독일인 사제, 프라하의 베드로(Peter of Prague) 신부는 로마로 순례가던 도중 볼세나(Bolsena)에서 묵게 되었다. 그는 경건한 사제로 알려져 있었으나, 축성된 면병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계신다는 것을 믿기가 어려웠다. 그가 순교자 성녀 크리스티나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에서 미사 성제를 거행하고 있었는데, 성체 축성을 하자 말자 축성된 면병으로부터 피가 흐르기 시작하여 신부의 손가락들을 적시고, 제대와 성체포(聖體布) 위로 흘러내렸다. 신부는 몹시 당황하였다. 처음에는 피를 감추려고 했으나, 곧 그는 미사를 중단하고, 마침 교황 우르바노 4세께서 머물고 계시던 이웃 도시 오르비에또(Orvieto)로 인도해 달라고 하였다. 교황은 신부의 ..
란치아노 성체의 기적(8세기) 란치아노 성체의 기적(8세기) 이태리 끼에띠 부근의 란치아노는 고대에는 안싸눔이라고 알려졌었다. 그 곳은 역사 상 첫 번 째의 성체 기적이 일어난 곳이다.성체 기적이 일어났던 다른 곳들, 즉 볼세나, 시에나, 페라라 등과 더불어 란치아노는 이태리 및 전 세계에서 아주 중요한 성지이다 유리병에 모셔진 살로 변환 성체와 기적의 성혈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 그러니까 8세기 중의 어느 날 아침, 성 바실리오회 소속의 한 수사 신부가 미사를 드리면서 예수님께서 성체 성사에 실제로 현존하심에 대하여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 신부가 막 빵과 포도주의 ‘성 변화를 위한 축성’을 끝낸 순간, 그는 갑자기 면병이 살아있는 살로 변하며 포도주의 외양이 살아있는 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너무나 놀란 신부는 이 사실..
불세나의 성체기적 과 올르비에또 불세나의 성체기적 과 올르비에또 서기 1263년 독일인 사제, 프라하의 베드로(Peter of Prague) 신부는로마로 순례가던 도중 볼세나(Bolsena)에서 묵게 되었다. 그는 경건한 사제로 알려져 있었으나, 축성된 면병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계신다는 것을 믿기가 어려웠다. 그가 순교자 성녀 크리스티나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에서 미사 성제를 거행하고 있었는데, 성체 축성을 하자 말자 축성된 면병으로부터 피가 흐르기 시작하여 신부의 손가락들을 적시고, 제대와 성체포(聖體布) 위로 흘러내렸다. 신부는 몹시 당황하였다. 처음에는 피를 감추려고 했으나, 곧 그는 미사를 중단하고, 마침 교황 우르바노 4세께서머물고 계시던 이웃 도시 오르비에또(Orvieto)로 인도해 달라고 하였다. 교황은 신부의 보고..
란치아노 성체의 기적 란치아노 성체의 기적 란치아노 성체의 기적 눈으로 볼 수 있는 살이 된 성체 때는 8세기가 막 시작될 때, 이탈리아의 란치아노에 있던 바실리오회의 수사신부 한 사람이 성체 축성의 말씀을 외운 후, 예수 현존에 대한 의혹이 들어 괴로와하게 되었다. 비록 무의식적인 유혹이긴 했으나 이 고통스러움은 한 사제의 믿음을 굳건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오랜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성체 기적 중의 하나가 되었다. 당황해 있는 사제의 눈 앞에서 성체가 눈에 보이게 살로 변했다 (중심부분은 빵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또 축성된 포도주는 밝은 색이 도는 빨간 피로 변해, 형태와 크기가 각기다른 다섯 개의 작은 핏덩이로 응고되었다. 살로 변한 성체는 12세기가 지난 오늘 날에도 볼 수 있듯이, 로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