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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의 예루살렘 리투아니아" 빌리우스 "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 북유럽 발트 해 연안에 위치한 공화국. 라트비아, 벨로루시, 러시아, 폴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수도는 빌뉴스이다. 14~16세기에 동유럽 전역을 지배했던 제국이었으나,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일부가 되었다가 1944년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고, 1990년 3월에 독립했다. 3국 중에서 국토가 가장 넓고 인구도 인천광역시와 비슷한 288만으로 가장 많다. 에스토니아가 134만이고, 라트비아가 221만명이다. 노랑은 빛과 태양을, 초록은 리투아니아의 자연을, 빨강은 활력을 의미한다 북쪽의 예루살렘 빌리우스 빌리우스는 프랑스 국립지리연구소의 발표에 의하면 지리적으로 유럽 대륙의 정 중앙에 위치한다. 수세기 동안 동과 서를 잇는 교차점에 위치해 있으면서 여러 차례의 전쟁, 점령..
라트비아의 베르사이유 "룬달레성 라트비아의 베르사이유 "룬달레성 프랑스 베르사유궁전과 오스트리아 쉔부른궁을 모델로 삼아 상트 페테르스부르그의 겨울궁전을 설계인 이탈리아 건축가인 바톨로메오 라스트렐가 룬달레궁을 설계했다고 합니다. 총 136개의 방이 있으나 관광객에 개방된 방은 40개 입니다 바로크 양식의 룬달레 성 룬달레궁전의 바로크 가든(Baroque Garden)은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삼은 프랑스식 정원입니다 바로크 양식의 파르테르(Parterre)정원. 파르테르 - 여러 화단과 길을 장식적으로 배치한 정원입니다. 화려한 로코코 양식으르 만들어진 황금의 방 천장 벽화는 프란체스코 마르티니와 카를로 주치의 공동 작품입니다 일본과 중국에서 가져온 도자기 들
라트비아의 스위스 "시굴다" 라트비아의 스위스 "시굴다" 시굴다 최고의 관광명소 투라이다 성. 파란하늘과 붉은색 벽돌의 성이 어울려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투라이다 성은 처음에는 목조로 요새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후 1214년 Bishop Albert의 요청으로 돌로 성을 지었으며 1215-1556년, 330년에 걸쳐 남쪽과 북쪽 성벽과 성을 계속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1776년 화재로 성이 파괴되었으며 20세기 중반에 복원되었습니다 투라이다장미(마이야)의 묘소 - 투라이다 교회 - 민속 역사 박물관 - 길이 끝나는 곳에 투라이다 성이 나옵니다 성안에 있는 건물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건물 오른쪽 3층 건물은 박물관 건물 왼쪽, 지하로 내려가면 감옥, 2층은 교회 투라이다 중세 성채는 리가 대주교의 명으로 착공된 이 ..
"발트해의 파리 "라트비아 수도" 리가" 발트해의 파리 "리가" 라트비아 수도 "리가" 1201년 브레멘 주교 알베르트가 건설한 도시로 800여년의 역사를 지닌다. 전체적으로 청록색 고딕양식의 건축물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리가는 발틱해의 수도들 중 가장 국제적인 도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최근 건축된 아름다운 빌딩들, 유구한 역사가 스며있는 교회, 박물관, 중세시대의 성, 긴 백사장, 자연그대로의 경관 등 매력적인 도시다. 12세기에 세워진 리가는 교역과 기술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주변 강대국에 강점되어 주권을 잃는 고통이 되풀이되는 속에서도 꾸준히 발전해 왔다. 그리하여 리가는 구소련의 라스베가스로 불릴 만큼 유흥도시가 되었다. 중세시대에는 한자동맹의 거점도시이기도 해서 리가는 과거부터 항상 활기를 띠는 도시였다고 ..
문화와 역사의 중심도시 에스토니아 "타르투시" 문화와 역사의 중심도시 타르투 에스토니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지만, 역사적으로는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라고 한다. 그 이유는 타르투라는 도시 명칭이 등장한 최초의 기록이 1030년에 나타났고, 이는 수도인 탈린보다 200년이나 앞선 것이라고 한다. 타르투에는 에스토니아 문화, 역사의 중심지인 1632년 세워진 타르투 대학교가 있다. 타르투 대학교는 북유럽 전체에서도 최고(最古)의 대학교 중 하나라고 한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닮은 하얀색 건물은 타르투 대학교 본관 건물입니다. 1632년. 스웨덴 국왕이었던 구스타프 2세가 설립한 타루트 대학은 유서깊은 명문대학입니다. 에스토니아 인구수는 130만,타루트에는 10만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타루트의 1/1..
발트해의 보석 에스토니아의수도 " 탈린시"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시 13세기 십자군기사단에 의해 조성된 성체도시 탈린의 구시가지는 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으로 네모난 돌들이 깔린 중세길들 양쪽으로 17세기에 지어진 건물의 모습들이 남아있어서 까페와 기념품가게. 호텔과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고 있다. 탈린의 가장 크고 장엄한 돔을 가진 알랙산드로옙스키 사원 , 탈린 중심에 자리잡은 톰페이언덕, 빨간 지붕과 미로같은 길이 한 폭의 그림같이 펼쳐진다. 탈린(Tallinn)은 덴마크(Taani) 사람이 만든 도시(Linn)라는 의미라 합니다. 그랬기에 톰페아 언덕으로 오르는 길 입구 목 좋은 곳에 덴마크 왕의 정원 이라고 부르는 곳이 아직도 있다 발트해의 보석이자 유네스코 문화유산 으로 지정된 탈린 구시가지 파트쿨리 전망대는 붉은 ..
들어본 적은있지만 잘모르는나라 발트 3국성지순례 (개요) 이름도생소한 발트 3국 발트해 동쪽의 세 나라를 지칭하는 말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제1차대전의 종결 후 3국은 독일군과 소련군을 몰아내고 독립국가가 되었다. 그후 발트 3국은 의회민주주의 헌법을 채택하고, 정치구조와 경제를 근대화하기 위해 광범위한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1940년에 소련에 합병되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구성했다. 발트 3국은 소련의 정치경제체제에 통합되긴 했지만 소련 내에서 가장 유럽적이면서 가장 번영한 지역을 이루고 있었다. 1980년대말 고르바초프에 의해 실행된 소련 정부의 자유화 정책으로 민족주의 감정이 고조되고 러시아인들의 지배에 대한 반감이 새로워졌으며, 그결과 1991년 소련의 쿠데타 실패 후 발트 3국은 주권을 선..
나가사기자료(종합) 와불과 국보급 그림(벽 안쪽) 레이호칸에서 사이쿄지 절을 올라가는 길. 最教寺 (Saikyô-ji Temple)의 3층탑 약 400 년 전 사원 건립 때 赤子의 울음소리가 망령을 추방했다는 전설이 있는 절로 아이와 관련된 사연이 많은 절로 보이며, 탑 지하에는 태아체험관이 있다.(어머니 배속에서 유영하듯 어둠 속에서 한바퀴 도는 체험을 해보았음) 4번째, 하라도 대교 밑에서 다섯번째, 다비라성당(田平カドリック敎會, 〒859-4824 長崎県平戸市田平町小手田免19, 전화 0950-57-0254) 1915년부터 3년 동안 신자들의 손으로 건설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장엄한 모습의 빨간 벽돌로 지어진 성당 교회 이 교회의 설계와 시공은 교회 건축의 제1인자인 테츠가와 요스케로의 벽돌로 지은 최후작품이며, 이보다 4..